바다의 제왕, 전함 이야기 #3 – 나치 독일의 전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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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제왕, 전함 이야기 #3 – 나치 독일의 전함들
  • 박병하
  • 승인 2020.01.03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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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에게는 '독일의 해군'은 잠수함인 '유보트'를 가장 먼저 떠올릴 정도로 잠수함이 주역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다. 물론 제 2차세계대전 중 독일 해군에서 가장 많은 활약을 펼친 함정(艦艇)은 물론 유보트들이다. 구 독일제국 시절인 제 1차 세계대전기까지만 해도 독일제국 해군(Kaiserliche Marine)은 세계 최대 규모인 영국 다음 가는 수준의 대규모 수상함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전함과 순양전함들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제 1차세계대전의 패배 이후, 독일제국 해군은 승전국 열강들의 전리품 취급을 받게 된다. 당시 독일제국 해군의 수상함대는 전쟁 중 큰 손실 없이 잘 보전되어 있었고, 영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함정을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승전국들은 너도나도 독일의 수상함대를 탐냈다. 특히 전국토가 전쟁터가 된 데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은 프랑스는 전쟁 배상을 명분으로 독일제국의 함대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전쟁 중 거의 손실 없이 보전된 독일 함대를 자국 해군에 편입하는 순간, 전력공백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독일제국 함대가 보유했던 74척에 달하는 함정들은 모두 영국으로 억류되었다. 그리고 이 함정들은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하는 회담장에서 누구의 몫으로 넘어갈 지 정해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독일의 입장에서 자국의 기술력을 총동원하여 건조한 주력함급 이상의 함정들이 타국에 넘어가는 것은 너무나도 뼈 아픈 일이었다. 이에 당시 억류된 함대를 지휘하고 있었던 루드비히 폰 로이터(Ludwig von Reuter, 1869~1943) 제독은 자신들을 감시하는 영국 해군이 훈련으로 출동한 틈을 타, 전 함대에 일제히 자침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하루 만에 독일 해군의 주력함 15척과 순양함 5척, 구축함 32척이 몽땅 바닷속으로 가라 앉았다. 이 사건이 '스캐퍼플로 독일 대양함대 자침 사건(Scuttling of the German fleet in Scapa Flow)'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세계 2위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독일제국의 대양함대는 단 하루만에 대부분이 수장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나마 건질 수 있었던 것은 구식 함정 몇 척에 불과했다. 이 결정을 내린 로이터 제독은 독일 해군이 불명예를 막고 기개를 드높인 군인으로 시민들에겐 존경 받았을지 몰라도, 해군의 입장에서는 사실 상 해군 전체가 증발해 버린 셈이 되었다. 그리고 베르사유 조약이 발효되고 나면서부터 독일의 신형함 건조는 막혀버린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히틀러가 집권하고 독일이 재무장을 하게 되면서 독일 해군은 다시금 주력함 건조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나치 독일의 전함이 바로 샤른호르스트급 전함과 비스마르크급 전함이다.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 독일(1939~1943)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2차대전 당시 독일 전쟁해군(Kriegsmarine)이 운용한 전함들이다. 1차 대전 이후 베르샤유 조약 아래 심각하게 쪼그라든 독일 해군 수상함대에서 비스마르크급 전함과 함께 가장 중요한 전력이었다. 특히 1번함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은 함체 대부분을 백색으로 도장하고 있었는데, 그 외관이 마치 중세시대의 우아한 성(城)의 모습을 연상시켜, ‘백색의 전함’이라는 별명으로도 통했다. 샤른호르스트는 만재배수량이 38,100톤에 달하는 거함이지만 뛰어난 성능을 가진 3기의 기어드 증기터빈에서 뿜어져 나오는 15만 1,893마력의 고출력으로 31노트(약 km/h)에 달하는 고속을 자랑했다.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특징은 무장과 방어력이 괴이할 정도로 ‘언밸런스’하다는 점이다. 샤른호르스트급 전함의 주포는 총 9문의 28cm SK C/34 함포다.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12인치 포보다 구경이 작은 11인치급 함포다. 반면 장갑은 주포의 수준을 아득히 뛰어 넘는 수준이었다. 측면의 주장갑대는 최대 350mm에 달했고 포탑은 최대 360mm 두께의 장갑으로 방어되었다. 이는 비록 구식 설계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15~16인치급 함포에 대응할 수 있는 장갑구조였다. 이렇게 된 이유는 본래 비스마르크급에 사용될 38cm(15인치) SK C/34 함포를 공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주포의 재고가 부족했기 때문에 샤른호르스트급에는 탑재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장갑 구조는 어디까지나 갑판보다 측면 방어력에 치중한 1차 대전 당시의 비효율적인 구조를 그대로 답습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노스케이프 해전에서 영국 전함 듀크 오브 요크(HMS Duke of York)가 발사한 14인치 포탄이 상부의 비장갑구획을 모조리 관통하여 보일러실을 직격하는 바람에 기동력을 상실하는 치명타를 입었다. 발이 묶인 샤른호르스트는 영국 해군에게 약 350발의 포탄과 11발의 어뢰를 얻어맞고 격침되었다.

샤른호르스트는 비스마르크와 함께 독일 전쟁해군의 수상함 중 가장 빛나는 전과를 올린 단 둘 뿐인 전함이다. 샤른호르스트는 영국의 항공모함 HMS 글로리어스(Glorious)를 포격으로 격침시킨 것은 물론, 호위로 붙어 있었던 구축함 2척까지 격침시켰다. ‘항공모함을 격침시킨 전함’이라는 전적을 가지고 있다. 이 때 샤른호르스트는 무려 26km의 거리에서 글로리어스를 명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비스마르크급 전함 – 독일(1940~1944)
비스마르크급 전함은 나치독일의 전쟁해군을 대표하는 전함이다. 비스마르크급 전함은 베르사유 조약의 붕괴 이후 독일의 재무장 과정에서 해군의 재건을 목표로 한 Z계획의 일환으로 건조가 시작되었으며, 1936년 기공되어 1939년에 진수, 1940년에 취역했다. 독일의 이 전함은 만재배수량 50,300톤에 달하는 거함으로, 아이오와급 전함과 야마토급 전함이 나타나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무거운 전함이었다.

비스마르크급 전함은 총 8문의 38cm(15인치) SK C/34 함포와 더불어 샤른호르스트보다 더 큰 덩치와 함께 샤른호르스트와 같은 다층식 방어구조로 무장했다. 게다가 이렇게 크고 무거운 군함임에도 총합 15만 마력(기록에 따라 16만마력)에 달하는 기관부 출력으로 30.1노트(약 55.6km/h)에 달하는 고속을 낼 수 있었다. 다만 장갑은 샤른호르스트에 비해 오히려 더 줄어들었다. 측면 하부의 주장갑대는 최대 320mm, 상부는 최대 145mm였다.

네임쉽 비스마르크는 덴마크 해협에서 영국의 함대와 조우하여 대단한 전과를 올린 바 있다. 이른 바 ‘무적의 후드(The Mighty Hood)’라고 불린, 영국의 왕립 해군을 상징하는 순양전함 ‘후드’를 ‘한 방’에 격침시킨 것이다. 당시 비스마르크는 영국 함대와의 교전 중 후드에서 발생한 작은 화재를 포착하였고 곧장 후드에 포격을 가했다. 그러자 비스마르크가 발사한 15인치 포탄이 이전부터 약점으로 지적 받았던 상부 장갑을 그대로 관통하여 탄약고에 직격, 후드는 퇴함 명령을 내릴 틈도 없이 일거에 폭침했다.

해군의 상징을 잃은 영국 해군은 긴급히 함대를 소집하여 비스마르크를 추격, 수많은 포격과 항공어뢰를 동원하여 끝내 격침시키고 만다. 이른 바 ‘비스마르크 추격전’으로 요약되는 이 극적인 함생(艦生)으로 인해 지금도 비스마르크급 전함은 다양한 매체에서 다뤄지고 있다. 유일한 자매함 티르피츠(Tirpitz)는 비스마르크가 침몰한 41년에서야 완성되었으며, 노르웨이에서 주둔하며 전략무기로서의 억지력을 발휘했으나 지진폭탄을 동원한 영국군의 거센 공세로 인해 1944년 침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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