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GM대우 마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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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GM대우 마티즈
  • 박병하
  • 승인 2020.03.2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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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국민차의 티코(Tico)로부터 시작된 대한민국의 경차 역사는 어느 덧 30년을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 경차의 역사는 1983년 대한민국 상공부가 에너지 절감 차원의 일환으로 세운 '국민차 보급 추진 계획'으로부터 비롯되었다. 이에 상공부 내에서 논의를 거치고 사업자를 선정하는 등의 절차를 거쳐 완성된 첫 경차가 바로 티코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차의 역사는 그리 순탄치많은 않았다. 경차는 소형차보다도 훨씬 작은 차체와 단가 상승을 막기 위해 빈약하게 채워 넣은 구성 등으로 인해 시장에서 인식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mm단위까지 따져가며 작은 차를 푸대접하기 일쑤였던 대한민국의 자동차 시장에서 경차는 설 자리가 없어 보였다. 일부 잡지나 신문 등에는 티코의 작은 크기와 상대적으로 낮은 성능을 근거없이 조롱하는 저급한 유머를 버젓이 싣기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경차의 가치는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1997년, 대한민국의 경제를 뿌리부터 뒤흔들었던 외환위기 사태를 맞은 전후로, 경차는 저렴한 획득단가와 각종 세제혜택에 힘입은 저렴한 유지보수비용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본래 티코 하나만 존재했었던 시장에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가 끼어들면서 경쟁구도가 만들어지며 경차 시장은 더욱 발전해 나갔다. 그리고 90년대 후반, 티코의 뒤를 이은 대우자동차의 새로운 경차 모델은 라이벌들을 압도하며 2000년대 경차 시장을 주도해 나갔다. 2000년대 경차 시장을 주름잡은 히트작이자, 경차의 대명사로 굳어진 이 차는 바로 대우 '마티즈(Matiz)'다.

국내 경차시장의 중흥기를 이끌다
대우국민차 티코가 대한민국경차 시장의 '개척자'라면, 마티즈는 경차 시장을 '중흥'시킨 차종이라고 할 수 있다. 대우자동차는 이미 티코의 이후를 대비하여 새로운 경차 모델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로운 경차는 티코보다 확대된 차체 크기와 더불어, 유럽식 MPV의 요소를 접목시켜 티코의 주요 불만 사항 중 하나였던 부족한 실내공간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고, 빈약했던 편의장비를 당시의 소형 승용차 수준으로 강화하여 상품성을 높이고자 했다.

마티즈의 디자인은 1992년, 토리노 모터쇼에 출품되었던 피아트 루치올라(Fiat Lucciola) 컨셉트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이 차는 본래 피아트가 직접 개발한 것이 아니고, 디자인회사 이탈디자인이 피아트 칭퀘첸토(500)의 후속 차종 컨셉트로 피아트에 제안한 차종이었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MPV 스타일의 차체 형상이 가장 큰 특징이다.

특히 전면부는 1박스형에 가깝게 디자인되어 있어,  작은 크기에서 보다 넓은 실내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1박스형에 가까운 통통한 차체와 더불어 넓은 면적의 창으로 작은 크기에서 최대한의 공간감을 확보함과 더불어, 매끈하게 다듬은 전면부 디자인과 캔버스탑 루프와 루프랙, 원형 헤드램프 등의 아기자기한 디테일로 소형차 고유의 매력까지 살려낸 컨셉트였다.

이러한 스타일은 2000년대 A~B세그먼트급 해치백 디자인의 상식처럼 자리잡았으니, 실로 시대를 앞서간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피아트는 이 컨셉트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대우자동차만큼은 이 컨셉트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근본적으로 스즈키 알토(Alto)의 라이센스 생산품이었던 티코와는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디자인으로 보였던 것이다.

대우자동차는 마티즈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이 컨셉트를 이탈디자인으로부터 사들여 마티즈의 디자인 근간을 이루게 한다. 사실 마티즈의 외관 디자인은 루치올라 컨셉트의 크기를 국내 경차 규격에 맞게 줄이고, 차체 형식을 5도어 해치백으로 전환한 결과물에 더 가깝다. 하지만 처음부터 디자인을 정해두고 설계에 돌입했기 때문에 개발진들이 상당히 어려움을 겪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마티즈의 깜찍하고 앙증맞은 디자인은 여성 소비자들에게 크게 주목 받았다. 대우자동차는 마티즈의 출시 첫해인 1998년, '디아트'라는 이름의 한정판 모델을 월 50대 한정으로 판매했다. 일종의 특별사양차로 만들어진 디아트는 크롬 장식과 투톤 바디컬러를 적용해 패션카로서의 면모도 뽐냈다. 이 외에도 1999년에는 전용의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 스포일러 등의 외장사양을 갖춘 '스포츠' 모델도 내놓았다.

이렇게 디자인과 기본 설계가 가닥을 잡은 후에는 엔진의 강화에 들어갔다. 기존에 티코에 사용하고 있었던 스즈키의 수출용 F8B 직렬 3기통 엔진을 기반으로 약가느이 개량을 가한  ‘F8C 헬리오스’ 엔진이었는데, 이 엔진은 41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철저하게 일본식 설계로 차체가 매우 가벼웠던 티코에게는 적당한 수준의 엔진이었으나, 새롭게 개발할 경차는 티코에 비해 중량이 월등히 무거워질 것이 자명했던 관계로, 동력성능을 증강할 필요가 있었다.

이에 대우자동차는 F8C 헬리오스 엔진의 41마력에 불과한 최고출력을 52마력까지 끌어 올리고 연료공급 방식을 기존 F8C의 카뷰레터에서 벗어나, 멀티 포인트 인젝션(MPI)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를 통해 기존 엔빈에 비해 연비 면에서도 큰 폭의 향상이 있었다. 그 덕분에 이 엔진을 탑재하게 된 마티즈가 티코에 비해 100kg 이상 무거워졌음에도 성능의 하락 폭이 그리 크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 엔진이 바로 대우 M-TEC 엔진이다.

변속기는 수동 5단 변속기를 기본으로, 초기에는 자동 3단 변속기를 선택사양으로 제공했다. 하지만 이 자동변속기의 성능과 특성이 썩 좋지 못했다. 3단 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종감속비가 지나치게 높아서 상용 회전수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부작용이 있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대우자동차는 마티즈의 출시 바로 이듬해인 1999년, 당시 일본 경차 시장에 널리 사용되고 있었던 무단변속기(이하 CVT)를 들여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술하겠지만 이는 더욱 끔찍한 악몽의 시작이었다.

1998년 시장에 출시된 마티즈는 아토스를 능가하는 뛰어난 상품성과 더불어 향상된 성능의 3기통 엔진이 만들어 내는 균형 잡힌 주행능력으로 아토스의 맹공세를 꺾었다. 철저한 상품 기획 아래 태어난 마티즈는 과거 티코가 누리고 있었던 경차 1위의 자리를 아토스로부터 탈환해낸다.

그런데 같은 해, 기아자동차에서도 새로운 경차 모델을 발표했다. 기아자동차가 발표한 신형 경차의 이름은 비스토(VISTO). 그런데 이 차는 전면부의 디자인이 아토스와 놀랄 만큼 닮아 있었고, 내부 구성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토스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붕이 다소 낮다는 것과 후면 디자인 일부다 다르다는 점 정도다. 이 차는 현대자동차가 본래 생산하고 있었던 아토스의 원형이자, 인도 시장 수출형 모델, 상트로(Santro)에 기아자동차의 간판을 붙인 차라고 할 수 있다.

2000년에는 아토스와 비스토에 맞서, 마이너 체인지를 거쳐 상품성을 강화했다. GM대우에서는 '마티즈 II'라는 이름을 붙인 페이스리프트 모델을 출시하여 경쟁자들의 압박에 대응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는 출력을 증강한 터보 모델을 추가하여 마티즈를 압박했다.

현대-기아의 경차는 마티즈를 도저히 쓰러뜨릴 수 없었다. 90년대 후반, 회사가 GM대우로 재편되는 등의 풍파를 겪는 와중에도 마티즈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반면 경쟁자였던 현대 아토스는 2002년, 후속 차종 없이 단종되는 운명을 맞았고, 기아 비스토는 이듬해인 2003년 단종되었다. 그리고 한동안 국내 경차 시장에서 마티즈는 티코에 이어 또 다시 독주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마티즈는 아토스와 비스토가 모두 사라진 2003년 이래 경차 시장을 독식했다. E3 CVT 모델의 변속기 결함 문제가 불거지면서 판매가 주춤하기도 했지만 2003년 이래로는 한동안 시장에 대안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판매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04년, 경차도, 소형차도 아닌 뭔가 애매한 녀석이 불쑥 나타났다. 바로 기아자동차의 모닝(Morning)이었다.

기아 모닝은 유럽 A세그먼트 시장 진출을 위해 개발된 모델로, 마티즈보다 약간 더 큰 차체와 1.0리터의 배기량을 가진 4기통 입실론 엔진, 4단 자동변속기 등을 탑재하고 있었다. 또한 마티즈에 비해 더욱 넓은 실내 공간을 제공했다. 하지만 이 차는 어디까지나 '심하게 작은 소형차'였을 뿐이었기에, 실질적으로 경차로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닝의 등장은 현재의 경차 규격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로 이어지기 시작했고, 이는 GM대우로서는 꽤나 불편할 수 밖에 없는 소식이었다.

이에 GM대우는 GM 감마 플랫폼 기반의 올-뉴 마티즈(M200)을 선보이며 모닝에 쏠린 시선을 돌리려 했다. 올-뉴 마티즈는 기존 마티즈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하되, 더욱 현대적으로 꾸며진 것과 더불어, 기존 마티즈에 비해 더욱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했다. GM대우에서는 올-뉴 마티즈의 공간을 보여주기 위해 농구선수 4명을 태우는 광고를 내보내는 등,  경차이면서도 넉넉한 공간을 가졌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부 디자인도 크게 변화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현대 라비타나 쌍용 로디우스 등과 같은 중앙에 배치된 계기반이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힌다.

엔진은 'M-TEC II'로 또 한 차례의 업그레이드를 거쳤다. 기존의 M-TEC 엔진에 저마찰 알루미늄 캠, 흡배기 구조 개선 등의 손실 저감 대책을 총동원하여 기존에 비해 더 높은 효율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모닝의 등장, 그리고 2008년을 기점으로 '1리터 경차'의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마티즈는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퇴색되기 시작한다. 기존의 경차 규격은 800cc 미만의 배기량, 길이 3,500mm 폭 1,500mm 높이 2,000mm 이하였다. 하지만 달라진 경차 규격은 1,000cc 미만의 배기량, 길이 3,600mm 폭 1,600mm 높이 2,000mm 이하다. 그런데 달라진 경차 규격은 기아 모닝의 사양과 거의 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그 때문에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를 근거로 "정경유착"이라고 비난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을 정도다.

경차로 편입된 기아 모닝은 무서운 기세로 판매량을 늘리며 GM대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존 규격에 따라 개방한 올-뉴 마티즈는 한 사이즈 더 커진 체급을 가진 모닝을 상대로 힘을 쓸 수 없었다. 풀체인지를 통해 기존 마티즈의 고질병들을 대부분 말끔하게 털어 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뉴 마티즈는 모닝의 맹공에 상당히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과거의 규격에 맞춘 기본 설계의 한계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모닝은 무서운 속도로 마티즈를 압도하기 시작했으며, 그동안 대우자동차가 쥐고 있었던 경차 시장의 주도권마저 기아자동차의 손에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에 GM대우는 2009년, 서울모터쇼에서 새로운 경차 모델을 출시했다. 이 차의 이름은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쉐보레 스파크를 원형으로 하고 있는 이차는 모든 면에서 마티즈를 뛰어 넘는 차였으며, 기아 모닝과의 대등한 경쟁 구도가 예상되었으며, 두 차종은 시장에서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승부를 몇 년 동안 이어 나갔다. 하지만 머지 않아 한국지엠이 정식으로 출범하고, 대우자동차 브랜드가 폐지되면서 '스파크(Spark)'라는 이름을 달게 되어 오늘까지 그 계보를 잇고 있다. 올-뉴 마티즈는 마티즈 크리에이티브가 등장한 이후에도 몇 년간 저가형 모델로 계속 판매가 이루어졌다.

마티즈는 해외 수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특히 많은 국가에서 뱃지 엔지니어링을 통해 다양한 브랜드의 자동차로 팔렸다. GM 계열인 쉐보레는 물론, 일부 국가에서는 폰티액(Pontiac) 배지를 달고 판매되기도 했고,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대우의 이름 그대로 판매되기도 했다. 마티즈는 유럽은 물론, 대만, 심지어 일본에서도 판매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잘못된 만남, 마티즈와 E3CVT
90년대 후반, 마티즈의 인기 요인 중 하나로 꼽혔던 요소 중 하나는 바로 CVT다. 대우자동차는 궁합이 좋지 못했던 3단 자동변속기를 버리고 일본 아이치기공의 E3CVT를 도입하여 마티즈에 적용하였다. 대우자동차는 이를 "수동 보다 덜 먹는 자동"이라는 광고 카피를 내세웠으며, CVT의 우수성을 역설했다.

CVT는 기어와 기어가 서로 맞물리는 형태인 통상의 변속기와는 달리, 두 개의 풀리(Pulley, 도르래)를 하나의 벨트로 연결하는 형태로 만들어진다. 두 개의 풀리는 각각 엔진과 구동축에 연결되며, 풀리의 직경은 가변(可變)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변속기의 기능을 구현한다. 이를 통해 고속 회전이 필요한 경우에는 구동축 측의 풀리 직경을 확대하고 저속에서 높은 토크가 필요할 때에는 엔진 측의 풀리 직경을 확대하는 식으로 변속 기능을 수행한다. 이 덕분에 이론 상 차단(次段) 변속에 따른 구동손실이 존재하지 않아, 주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최적의 기어비로 주행할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통상의 변속기에 비해 작고 가벼워서 경차를 위한 변속기로 안성맞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CVT의 채용은 이후, GM대우에게 있어 끔찍한 재난을 초래하게 된다. 바로 CVT의 '결함' 문제였다. 이는 변속기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는 대우자동차 측에서 엔진에 맞지 않는 사양의 변속기를 잘못 채용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본래 아이치기공의 E3 CVT는 배기량 660cc 미만의 일본 내수용 경차를 위해 만들어진 변속기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기량 796cc의 M-TEC 엔진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곳곳에서 소비자 불만이 터져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대우자동차는 리콜 없이 '무상수리'로 일관하는 대응만을 보여 더더욱 비난 받았다. 심지어 대체품을 찾지도 못한 채, 단종되는 그 날까지 이 결함품을 계속 사용했다. 이 CVT를 사용한 마티즈는 주행 중 고장을 일으키게 되면 동력전달이 끊기거나 시동이 정지되어버리기 때문에 대형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현재까지도 마티즈의 E3CVT는 한국지엠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는 혹덩어리다. 심지어 한국지엠에서는 2012년도부터 2018년도까지 무려 6년에 걸쳐 E3 CVT 사양의 마티즈를 일종의 보상판매 형태로 매입하는 이벤트까지 벌였을 정도다.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치명적인 결함 요소를 만들어 놓고도 대안도 찾지 못했다는 점에서 대우자동차는 비난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그나마 이후에 출시한 스킨체인지 모델인 '올뉴마티즈'에는 4단 자동변속기를 도입했다. 마티즈는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CVT에 대한 인식을 바닥으로 떨어뜨려 놓은 주범으로 손꼽힌다. 기아자동차가 CVT를 적용한 K3를 처음 내놓았을 때 'CVT'가 아니라 'IVT'라는 이름을 끝끝내 고집하고 있는 것도 마티즈가 망쳐놓은 CVT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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