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엔 ‘짐차’라고 외면하기엔 너무나 매력적인 픽업들이 많다. 북미 시장을 겨냥한 픽업이 주를 이룬다. 호주의 스포츠 픽업, 남미와 유럽의 실속형 픽업도 관심을 끈다. 우리에겐 잘 알려지지 않은 세상의 별별 픽업들.
포드 F-150 SVT 랩터 수퍼 크루 V8 6.2L 가솔린/45,470달러
포드 F-150은 1948년 데뷔 이래 60여 년간 명맥을 이어 온 장수 트럭이다. 단일 차종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지금의 F-150은 12세대 째로 2008년 선보였다. SVT 랩터는 F-150의 고성능 버전으로 411마력을 낸다. 변속기는 자동 6단이다. 수퍼 캡은 문이 두 개, 수퍼 크루는 네 개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차는 진정한 스포츠카다. 거의 모든 아웃도어 활동을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디자인마저 끝내준다.
랜드로버 디펜더 SVX 직렬 4기통 2.4L 디젤 터보/30,495파운드
디펜더 SVX는 랜드로버가 지난 2008년 디펜더 탄생 60주년을 기념해 200대만 생산한 스페셜 에디션이다. 사진처럼 뚜껑 없이 소프트 톱만 갖춘 버전과 일반형의 두 가지로 선보였다. 소프트 톱은 앞좌석만 씌울 수 있다. 뒤 공간은 스페어타이어 등을 싣는 적재함으로만 쓴다. 랜드로버는 디펜더 SVX 1호차를 영국 적십자사의 자선경매 물품으로 기증했다. 랜드로버는 SVX 이외에도 툼 레이더 에디션 등 디펜더 특별판을 꾸준히 선보여 왔다.
F 시리즈는 숫자와 비례해 몸집이 커진다. F-150도 상당히 큰 데, F-450을 국내에 들여온다면 딱 걸리버 신세다. 뒷바퀴도 두 개씩 포갰다. 이 때문에 수퍼카처럼 뒷바퀴 주위가 팍 불거졌다. 미국 픽업이라고 휘발유만 마시는 건 아니다. F-450 수퍼 듀티는 400마력짜리 디젤 엔진을 얹는다. 자동 6단 변속기와 사륜구동 시스템을 갖춰 운전도 편하고, 어떤 지형이든 망설임 없이 들어설 수 있다. 한 마디로, 자가용 트럭계의 ‘옵티머스 프라임’이다.
캐딜락 에스컬레이드 EXT V8 6.2L 가솔린/63,060~69,640달러
국내엔 한 가지만 수입되지만, 해외엔 에스컬레이드가 세 가지 다른 버전으로 나온다. 우리에게 익숙한 기본형 이외에, 허리를 잡아 늘린 장축 버전과 꽁무니에 적재함 얹은 픽업이 있다. 에스컬레이드 EXT는 캐딜락 딱지 붙은 ‘짐차’가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픽업이 미국인의 생활 깊숙이 녹아들었다는 증거다. 물론 값이 비싼 만큼 공사판 누비는데 쓰진 않는다. 주말마다 제트스키나 사륜오토바이를 싣고 나들이 가는 모습이 훨씬 더 어울린다.
쉐보레 실버라도 3500HD V8 6.0L 가솔린/30,365~46,630달러
우리 이웃으로 거듭난 쉐보레 차종 가운데 국내에 소개된 건 일부에 불과하다. 본고장 미국에서 파는 대형 픽업을 보면, 국내에서 오물조물 소꿉장난 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쉐보레를 대표하는 트럭은 실버라도 시리즈다. 역시 숫자가 클 수록 거대하다. ‘HD’는 ‘헤비듀티(튼튼한)’의 줄임말이다. 실버라도는 3500HD 안에서도 굴림 방식과 적재함 형태에 따라 수많은 모델로 나뉜다. 옵션으로 397마력을 내는 V8 6.6L 가솔린 엔진도 고를 수 있다.
램 3500 섀시 캡 직렬 6기통 6.7L 디젤 터보/36,800~58,645달러
크라이슬러 그룹은 다지 브랜드로 램 픽업을 선보여 왔다. 국내에서 판매 중인 다코타도 다지 소속이다. 그런데 북미에서는 트럭을 램 브랜드로 독립시켰다. 3500은 램 시리즈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크다. 섀시 캡은 하반신에 뼈대만 남긴 모델로, 용도에 따라 뒷부분을 고를 수 있다. 가령 사진의 차는 견인용이다. 국내에 흔한 액티언 스포츠나 리베로 견인차와 스케일이 다르다. 6.7L 디젤 엔진을 얹는데, V6이 아닌 직렬 6기통이어서 눈길을 끈다.
토요타 하이럭스 더블 캡 직렬 4기통 2.5L 디젤 터보/18,890파운드
하이럭스는 토요타의 소형 픽업이다. 1968년 처음 데뷔했다. 현재 모델은 7세대 째로 2005년 등장해 지난해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초창기보다 몸집을 한참 키웠지만, 여전히 토요타 픽업 가운데 가장 작다. 같은 이유로, 북미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팔방미인으로 사랑받는 ‘월드 픽업’이다. 생산거점도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7개국에 걸쳐 있다. 엔진도 각 시장별로 다르다. 동남아에서는 가솔린, 영국 등 유럽에서는 디젤 엔진을 얹는다.
타코마는 토요타의 중형 픽업이다. 1995년 미국 시장에서 하이럭스를 철수시키면서 그 빈자리에 투입했다. 직렬 4기통 2.7L 엔진도 얹는데, 뒷바퀴 굴림만 나온다. 반면 V6 엔진은 사륜구동을 고를 수 있다. 풀 사이즈 트럭을 몰다 덩치와 유지비가 부담스러워 타코마를 찾는 경우가 많다. 물론 미국 기준으로 아담할 뿐, 타코마도 꽤 큰 픽업이다. 참고로 국내에서 몰고 다니면 다들 크다며 화들짝 놀라는 다지 다코타가 타코마의 라이벌이다.
토요타 툰드라 크루맥스 4×4 V8 5.7L 가솔린/34,630달러
토요타가 풀 사이즈 픽업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주위에서 우려 섞인 반응이 쏟아졌다. 1999년 툰드라가 베일을 벗었다. 수입차 업체 최초로 만든, V8 엔진 얹은 미국적 감성의 풀 사이즈 픽업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툰드라는 토요타 역사상 초기 물량을 가장 빨리 소진한 차종으로 기록되었다. ‘올해의 트럭’에 선정되는 등 미 언론의 반응도 호의적이었다. 지금의 툰드라는 2007년 나온 2세대로, 탑승 및 적재공간에 따라 세 가지 버전으로 나뉜다.
폭스바겐 아마록 직렬 4기통 2.0L TDI/22,533파운드
아마록은 폭스바겐 상용차 사업부가 아르헨티나에서 생산하는 픽업이다. 2009년 데뷔했다. 디자인은 폭스바겐 그룹 디자인 총괄 발터 드 실바의 솜씨로, 폭스바겐 특유의 간결한 디자인을 뽐낸다. 4모션(사륜구동)과 FSI(가솔린 직분사), TDI(터보 디젤 직분사), DSG(듀얼 클러치 변속기) 등 폭스바겐 고유의 기술도 아낌없이 담았다. 데뷔 직후 폭스바겐은 아마록 45대를 다카르 랠리에 지원차로 투입했다. 아마록은 에스키모어로 ‘늑대’라는 뜻이다.
홀덴 콜로라도 4×4 크루 캡 픽업 직렬 4기통 3.0L 디젤 터보/17,990~45,990호주달러
홀덴은 GM의 호주 자회사다. GM 차를 생산할 뿐 아니라 호주 현지에 맞는 차를 직접 개발하기도 한다. 콜로라도는 같은 이름을 가진 GM 픽업의 호주 버전이다. 뼈대 및 주요 부품은 같지만 외모를 다듬어 차별화했다. 콜로라도는 뿌리를 일본차에 뒀다. 이스즈 D-맥스라는 픽업이 원조인데, 15개국에서 각기 다른 브랜드와 이름으로 생산된다. 적당한 덩치와 무난한 디자인, 저렴한 가격으로 생활 깊숙이 녹아든, 전형적인 ‘생활밀착형’ 픽업이다.
혼다 리지라인 V6 3.5L 가솔린/29,250~37,180달러
리지라인은 혼다가 처음 도전한 미국형 픽업이다. 2005년 5월 미국에서 데뷔했다. 남다른 기술에 집착하는 혼다답게 흔한 사다리꼴 프레임 대신 유니보디 차체를 도입했다. 혼다는 프레임 방식보다 굽힘 강성은 2.5배, 비틀림 강성은 20배 더 강하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네 바퀴 독립식 서스펜션으로 승차감과 핸들링을 살렸다. 또한, 픽업 최초로 별도의 트렁크를 달았다. 엔진도 대부분 픽업과 달리 가로로 얹는다. 하여튼 못 말리는 혼다다.
닛산 타이탄 V8 5.6L 가솔린/28,160~40,780달러
타이탄은 국내에서 판매 중인 인피니티 QX56과 친척뻘이다. 뼈대와 파워트레인을 나눠 쓴다. QX56이 그렇듯 타이탄 역시 엄청나게 큰 차다. 닛산에서 가장 큰 픽업으로 미국에서도 풀 사이즈로 분류된다. 타이탄은 2004년 처음 선보인 이후 지금껏 풀 모델 체인지 없이 버티고 있다. 인기가 시원치 않다는 뜻이다. 현재 미국 풀 사이즈 픽업 시장에 안착한 외국 업체는 토요타 정도다. 이처럼 남의 나라 문화를 이해하고 파고드는 건 만만치 않다.
닛산 프론티어 V6 4.0L 가솔린/18,740~32,470달러
프론티어는 타이탄의 동생뻘 되는 중형 픽업이다. 현재 필리핀을 제외한 아시아 시장에서는 나바라로 팔린다. 스즈키도 주문자 상표부착 방식으로 판매 중이다. 프론티어는 1997년 처음 데뷔했고 2005년 지금의 2세대로 거듭났다. 판매지역에 따라 닷선, 피에라, 테라노, 픽업, 하드보디, 위너 등 별별 이름을 다 붙였다. 차체는 문 두 개짜리 킹 캡과 네 개까지 크루 캡, 굴림방식은 뒷바퀴와 네 바퀴로 각각 두 가지씩이다.
이 픽업은 여러 면에서 지극히 마쓰다답다. 우선 디자인이 그렇다. 남성미 강조하느라 차체를 무뚝뚝하게 썰기 바쁜 여느 픽업과 달리 경단 빚듯 정성껏 둥글려 모양냈다. BT-50은 2006년 처음 등장했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생산되고 팔리는 여느 픽업처럼, 이 차도 포드가 레인저로 미국 시장에 선보였다. 지금의 2세대 모델은 2010년 호주 모터쇼에서 데뷔했다. 이번엔 마쓰다와 포드가 각각 따로 디자인했다. 사진의 차는 마쓰다 버전이다.
푸조 호가르 직렬 4기통 1.6L 가솔린/32,000달러
착시 현상이나 합성이 아니다. 진짜 푸조 207의 얼굴을 지닌 픽업이 있다. 이름은 호가르로, 푸조가 브라질 시장을 위해 현지에서 개발한 픽업이다. 현지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푸조의 남다른 의지를 보여주는 차다. 푸조는 호가르를 개발하기 위해 1억 레알(브라질 화폐 단위)과 320명의 엔지니어를 투입했다. 얼굴만 207일뿐 무게 740㎏, 부피 1000L 이상의 짐을 거뜬히 실어 나른다. 엔진은 다른 207 형제처럼 1.6L를 얹는다.
다치아 로간 픽업 직렬 4기통 1.6L 가솔린/6,900유로
다치아는 1999년 르노의 자회사로 거듭난 루마니아 자동차 업체다. 루마니아 수출의 10%를 차지하는 효자 기업이기도 하다. 다치아 로간 픽업은 세단과 왜건으로 나오는 로간을 기본으로 만들었다. 상용차답게 꽃단장과 거리는 멀지만, 실속만큼은 최고다. 길이 1.94m, 무게 800㎏의 짐까지 소화한다. ABS는 물론 에어컨까지 옵션이다. 그래서 원하는 예산에 딱 맞는 사양을 갖출 수 있다. 편의장비 비만에 시달리는 국산차와 대조적이다.
홀덴 VE Ⅱ 유트 SSV V8 6.0L/47,490호주달러
미국이든 호주든 픽업은 젊은이들과 궁합이 잘 맞는 차다. 차 가격과 보험료 모두 저렴한 까닭이다. 그런데 호주의 픽업은 미국과 조금 다르다. 승용차 꽁무니에 적재함 단 형태가 많다. 미국처럼 수더분하게 타지도 않는다. 화끈하게 튜닝해 스포츠카처럼 몰고 다닌다. 홀덴 VE Ⅱ 유트 SSV가 좋은 예다. 코모도어란 중형차를 기본으로 만든다. 사진의 차는 고성능 버전이다. 꽁무니 절반이 없어 가뜩이나 가벼운 차를, 362마력짜리 엔진으로 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