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스로이스의 심장을 품은 항공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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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의 심장을 품은 항공기들
  • 박병하
  • 승인 2023.01.27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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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6년 설립된 영국의 롤스로이스(Rolls-Royce Motor Cars)는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자동차를 제작하는 럭셔리카 브랜드로 손꼽힌다. 이 1백 년도 넘은 자동차 기업은 자동차 딜러와 레이서를 병행하던 귀족 출신의 찰스 스튜어트 롤스(Charles S. Rolls)와 전기기술자인 프레드릭 헨리 로이스 경(Sir Frederick Henry Royce)이 공동으로 설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롤스로이스는 또 다른 분야에서도 유명하다. 바로 '항공' 분야다. 그 중에서도 동력 항공기의 핵심 요소인 '엔진'을 공급하는 기업으로 유명하며, 이쪽 부문 역시 오늘날까지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자동차 제조사였던 롤스로이스가 항공 분야에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은 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전후해서부터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항공기는 자동차의 것과 동일한 왕복엔진(레시프로 엔진)을 사용했기 때문에 기술적 공통성이 높았다. 그래서 이 당시부터 전간기~제 2차 세계대전기에 활동했던 자동차 기업이 전후에도 항공엔진을 납품하거나, 항공기 (엔진) 제작사였던 기업이 자동차 분야로 '전업'하는 현상이 벌어졌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롤스로이스는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첫 항공기 엔진 제작에 성공했고, 이후 1차대전 내내 대량의 엔진을 공급하며, 영국군 뿐만 아니라, 연합군 항공기 절반 가량의 심장을 책임졌다. 그리고 이렇게 항공엔진 부문이 급격한 성장을 이룩하면서, 항공엔진 부문의 수익이 본업이었던 자동차 부문의 수익을 까마득히 추월할 정도로 급성장을 이루었다. 사실 상 1910년대 롤스로이스 수익의 대부분은 항공엔진 부문에서 나왔을 정도였다. 이는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항공기가 가지는 전술/전략적 가치에 열강들이 눈을 뜨게 되면서 항공 부문에 국가적인 차원의 투자가 이루어지면서 항공업계가 급속도로 성장한 데 따른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롤스로이스의 항공엔진 부문은 뒤이어 벌어진 제 2차 세계대전기에도 큰 활약을 하게 된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나게 되면서 항공엔진의 패러다임은 레시프로 엔진에서 제트 엔진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나치 독일군이 전쟁 말기에 투입한 Me 262 슈발베 제트 전투기가 연합국에 상당한 충격을 안겼던 것이다. 세계 최초의 실용 제트 전투기인 Me 262는 종래의 레시프로 엔진과 프로펠러를 이용해 추진하는 항공기들을 압도하는 속도를 낼 수 있었고, 이 압도적인 속도를 무기이자 방어수단으로 삼아 연합군의 폭격기를 순식간에 접근해 일격을 날리고 이탈하는 전법으로 최후의 발악을 벌였다. Me 262의 무시무시한 속도에 충격을 받은 연합군은 전쟁 말기부터 제트 엔진을 사용하는 군용 항공기의 개발을 서둘렀는데 이 과정에서 롤스로이스 역시 재빠르게 제트엔진의 연구 및 실용화에 착수해 순탄하게 제트 엔진의 시대로 넘어왔다. 그리고 지금도 미국의 제너럴 일렉트릭스(GE), 프랫 & 휘트니(P&W) 등과 함께 세계에서 톱 클래스로 꼽히는 항공엔진 제조사로 활동하고 있다.

물론 오늘날 자동차를 만드는 롤스로이스 모터카와 항공엔진을 만드는 롤스로이스 plc(Rolls-Royce plc.)는 완전히 분리된 회사이며, 그저 이름만 같이 쓰는 머나먼 종친 관계에 가깝다. 롤스로이스는 1970년대에 상업용 항공엔진의 실패로 파산위기에 몰렸었는데, 이 과정에서 1971년 영국의 국영기업이 되었다. 그리고 1973년 영국의 거대 중공업 기업 빅커스(Vickers)로 넘어갔다가 1987년 롤스로이스의 항공엔진 부문이 롤스로이스 plc로 분사되었고, 자동차 부문은 1998년까지 빅커스 산하에 있다가 BMW로 넘어가 오늘에 이르고 있다. 

롤스로이스 plc는 한 뿌리였던 자동차 부문과 더불어 오랜 역사를 이어 오고 있는 기업이기에, 롤스로이스의 엔진을 사용하는 항공기들도 굉장히 많다. 심지어 제 2차대전기에는 영국뿐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롤스로이스의 엔진을 상당수 채용했을 정도였다. 현재 롤스로이스의 항공엔진 사업을 이어오고 있는 롤스로이스 plc는 빅커스로부터 독립한 이래 성장을 거듭하여 현재는 영국 굴지의 방위산업체로 거듭났다. 롤스로이스의 심장을 품은 주요 항공기들을 모았다. 

수퍼마린 스핏파이어
이 아름다운 외관을 가진 프로펠러 전투기는 후술할 호커 허리케인과 함께 나치독일로부터 영국의 하늘을 수호한 양대 전투기다. 이 전투기에 탑재된 롤스로이스의 엔진은 롤스로이스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멀린(Merlin) 엔진으로, 초기형에 해당하는 Mk.I형에는 1,030마력의 출력을 내는 멀린 III 사양이 적용되어 고도 5,669m 상공에서 최대 590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가장 많이 생산된 Mk.V형에는 1,470마력을 내는 멀린45 사양이 적용되어 고도 6,096m 상공에서 최대 597km/h의 속도를 낼 수 있었다. 후기형에 해당하는 Mk.IXe에는 최고출력 1,720마력 사양의 멀린61 사양이 적용되어 6,401m 상공에서 656km/h의 최고속도로 비행할 수 있었다. 대전 말기에 등장한 Mk.XIV형에는 완전히 새롭게 개발한 롤스로이스 그리폰 엔진을 탑재했다.

호커 허리케인
이 전투기는 비록 외모는 경주용 항공기 출신인 스핏파이어에 비해 투박하고 둔중해 보일 수 있지만, 앞서 언급한 스핏파이어와 더불어 영국을 구한 양대 전투기다. 이 전투기는 전금속제 항공기인 스핏파이어와는 달리, 동체의 후방에 복엽기 제작에 사용했던 목재와 방수직물을 적용해 단가를 크게 낮추고 생산성을 크게 높인 것이 특징이다. 이 당시 영국 항공업계에 전금속제 항공기가 아직은 완전히 일반화되지 않았던 시절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전금속제인 스핏파이어에 비해 가볍고 다루기 쉬운 특성으로 인해 신참 조종사들이 많이 거쳐가기도 했다. 이 전투기에는 1,185마력을 내는 롤스로이스 멀린 XX 사양의 엔진이 적용되었다.

노스 아메리칸 P-51 머스탱
뜬금없이 웬 미국 전투기냐고 물을 독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 P-51 머스탱은 롤스로이스의 멀린 엔진을 만나고 나서부터 명품 전투기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심지어 머스탱을 처음으로 도입한 국가는 다름 아닌 영국이었다. 영국군 내부에서는 머스탱의 성능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지만, 고고도에만 올라가면 제 성능을 못 내는 문제로 인해 엔진을 교체하는 시험을 진행했는데, 이 때 채용한 엔진이 바로 롤스로이스 멀린 엔진이었던 것이다. 멀린 엔진으로 심장을 바꾼 머스탱은 우수한 고고도 성능과 속도, 준수한 항속거리를 가진 명품 전투기로 탈바꿈했으며, 종국에는 '전쟁을 이긴 전투기'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글로스터 미티어
독일의 Me 262 보다 1년 늦게 실전배치가 이루어진 영국군 최초의 제트 전투기인 글로스터 미티어에도 롤스로이스의 엔진이 사용되었다. 더윈트(Derwnt)라 명명된 이 엔진은 미티어의 초기형부터 후기형까지 지속적으로 개량이 진행되어 사용되었다. 이 엔진을 탑재한 미티어 전투기는 해수면에서 782m/h, 고도 3,050m 상공에서 837km/h의 최고속도로 비행할 수 있었는데, 중저고도에서 고속으로 비행할 수 있는 특성으로 인해 주로 대전 말기 V1 로켓 요격에 투입되었다고 한다. 이 전투기는 한국전쟁에도 호주군 소속으로 참전하기도 했다.

팬텀 FG.1
냉전기에 만들어진 3세대 전투기의 대명사, F-4 팬텀 II의 영국군 사양인 팬텀 FG.1과 팬텀 FGR.2, F.3 등에도 롤스로이스의 엔진이 탑재되었다. 영국군은 자국의 팬텀에 미군 사양의 GE제 J79 엔진 대신, 롤스로이스의 스페이(Spey) 201 터보팬 엔진을 장착해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영국군의 팬텀은 미군 사양에 비해 더욱 큰 동체를 가지며, 고고도에서 최고속도가 약간 떨어진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가속성능이나 이착륙 거리, 상승력, 항속거리 등 다른 주요 성능은 미군 사양 대비 약 10~15% 정도 더 높은 성능을 냈다고 한다.

유로파이터 타이푼
현재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의 주력 전투기인 유로파이터 타이푼에 탑재되고 있는 유로제트 EJ200 역시 기본설계는 롤스로이스의 엔진을 기반으로 한다. 1980년대 롤스로이스가 개발한 XG40 엔진을 바탕으로 공동개발국들이 분담해서 개발완료한 이 엔진은 작고 가벼우면서도 추력 대 중량비가 우수한 고성능 엔진으로 평가 받는다. 

에어버스 A380
세계 최대의 여객기로 지금도 상업운항 중에 있는 에어버스의 A380에 사용되는 엔진은 롤스로이스에서 공급하고 있는 트렌트 900 계열의 엔진이다. 동형 계열인 트렌트 800을 개량하는 형태로 개발한 이 엔진은 지금도 대부분의 A380에 탑재되어 있다. 2010년 호주의 콴타스 항공에서 운항중이었던 A380에서 엔진이 폭발하는 대형 사건이 터져 롤스로이스의 명성에 먹칠을 한 바 있지만, 현재는 문제점에 대한 개선이 이루어진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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