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군함 이야기 - 연합군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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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군함 이야기 - 연합군 편
  • 박병하
  • 승인 2023.11.02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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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차 세계대전 시기에는 세계 각국의 바다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대서양에서는 잠수함인 유보트가와 이를 잡기 위한 사투가, 태평양에서는 항공전력을 앞세운 항공모함 세력이 대두하면서 해전의 패러다임마저 바뀌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수많은 배들이 침몰했으며, 그 중 일부는 유달리 안타깝고 씁쓸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격침됐던 군함들을 짧게 다뤄본다.

단 한 방에 격침당한 왕립해군의 상징 - HMS 후드
영국의 애드미럴급 순양전함 중 유일하게 건조 및 취역한 후드(Hood)는 영국 왕립해군의 자랑이자,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다. 당대 최대 규모인 만재배수량 47,430톤의 덩치와 더불어 최고 30노트의 빠른 속도와 15인치(약 381mm) 8문의 강력한 화력을 겸비한 이 잘 빠진 순양전함은 무적의 후드(Mighty Hood)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은 위용을 자랑했다.

그러나 이 배는 속도를 위해 방어력을 희생한, 1차대전기 순양전함(Battlecruiser)의 한계는 극복하지 못했다. 물론 왕립해군도 이를 알고 있었고, 추후 개장공사를 통해 취약지점을 보완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후드가 개장공사를 거칠 틈도 없이 제 2차 세계대전이 벌어졌고, 후드는 나치독일의 신형 전함 비스마르크를 상대하기 위해 출항했다. 그러나 비스마르크가 발사한 15인치 포탄에 하필이면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부위가 관통, 탄약고 유폭으로 인해 배가 대폭발을 일으키며 두동강이 나고 말았다. 단 한 방으로 영국 해군의 상징을 가라앉힌 비스마르크는 복수심에 불탄 영국 해군의 맹추격을 받아 끝내 자신도 격침되기에 이르렀다.

전함 시대의 몰락을 알리다 - HMS 프린스 오브 웨일즈
킹 조지 5세급(King George V-Class, 이하 KGV급) 전함의 2번함으로 취역한 프린스 오브 웨일즈는 기존 슈퍼드레드노트급 전함의 공격력과 방어력, 순양전함의 속도를 양립한, 당시 영국의 최신예 고속전함(Fast Battleship)이었다. 비록 20년 전에 등장한 후드보다도 구경이 작은 14인치 포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전방에 6문, 후방에 4문으로 도합 10문으로 무장했고, 최고 속도도 28노트로 준수했으며, 무엇보다도 후드에게 있었던 방어력의 문제를 해결했다. 군축조약에 맞추기 위해 당대 최신의 설계사상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들이 총동원되어 건조된 KGV급 전함은 총 5척이 각지의 바다를 누비며 싸웠다. 2번함 프린스 오브 웨일즈 또한 비스마르크를 추격하는 임무에 동원되었으며, 비스마르크의 함수를 파괴하는 등 활약했다.

그러다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침공하면서, 왕립해군은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순양전함 리펄스, 항공모함 인도미터블을 중심으로 구성된 기동함대를 급파했다. 그리고 1941년 벌어진 말레이 해전에서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리펄스는 일본 항공대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며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이렇게 된 원인으로는 본래 이들을 따라가기로 한 항공모함 인도미터블이 원인 불명의 고장으로 함대에서 이탈하게 되었고, 동남아 지역의 영국 공군은 구식의 전술기만 보유하고 있었던 데다, 이들이 도착했을 즈음에는 이미 중일전쟁으로 실전경험을 착실하게 쌓은 일본군의 항공전력에 격파당해, 이들을 지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영국 최신예 전함이 항공 세력의 공격으로 무기력하게 최후를 맞는 바람에, 19세기 말~20세기 초를 지배하던 전함은 구시대의 산물임이 증명하고는, 그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전함에게 격침당한 항공모함 - HMS 글로리어스
글로리어스는 본래 커레이저스급 순양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한 군함이다. 순양함으로 건조되었던 배를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실험이 적용되었는데, 이 때문에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그렇지만 영국은 이들 함선을 건조하면서 습득한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미국 보다도 앞서서 선진적인 항공모함 설계사상을 정립할 수 있었다. 반면, 위의 프린스 오브 웨일즈가 항공전력에 의해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구시대의 산물이었다면, 글로리어스는 그 구시대의 산물, 심지어는 기술이 단절되어 더더욱 낡은 설계사상으로 지어진 독일의 전함에게 격침되는 운명을 맞았다.

1940년 4월 나치독일이 노르웨이 침공을 시작하자,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영국은 글로리어스를 북해로 급히 파견하게 된다. 두 달 가까이 초계임무를 수행하던 글로리어스는 6월, 독일 전함 샤른호르스트를 기함으로 하는 독일 함대의 공격을 받는다. 당시 글로리어스는 함재기를 모두 내보낸 상태였던 데다,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샤른호르스트를 비롯한 독일함대를 아군으로 착각했고, 샤른호르스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글로리어스에게 주포를 발사, 글로리어스의 비행갑판에 직격탄을 낸 것을 시작으로 맹렬한 포격을 가한 끝에 끝내 글로리어스를 격침시키기에 이른다. 이로 인해 글로이어스는 전함에게 격침당한 처음이자 마지막 항공모함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자기가 쏜 어뢰에 자기가 맞아 격침당한 잠수함 - USS 탱
무릇, 무기의 기본은 사용자의 안전은 보장하면서도 적은 확실하게 타격을 입힐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잠수함은 그 기본조차 되지 못한 무기로 인해 수많은 공훈을 세웠음에도 허망하게 침몰하고 말았다. USS 탱(USS Tang)은 1942년도부터 건조되기 시작한 미 해군의 신형 잠수함인 발라오급(Balao-class) 잠수함의 5번함으로, 1944년 10월까지 무려 33척, 톤수로 116,454톤에 달하는 선박을 침몰시키며 미국 잠수함 중 가장 많은 선박을 용궁으로 보낸 수훈함이었다.

이 당시 탱이 발사했던 어뢰는 미국이 개발한 전기추진식 어뢰인 Mk.18이었다. 그러나 이 어뢰는 먼저 사용했던 에탄올 추진식의 Mk.14 어뢰에서 지목되었던 '항주의 불안정성'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 당시의 무유도 어뢰는 자이로스코프를 이용해 직진으로 항주하도록 설정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 자이로스코프의 작동에 문제가 있어, 어뢰가 똑바로 직진하지 못하고 빙글빙글 도는 '원주운동'을 해버린 것이다! 이 때문에 탱은 자기가 쏜 어뢰가 후미를 강타하면서 침몰, 함장 포함 9명만이 생존하고, 전원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 이전에도 미 해군의 어뢰는 여러가지로 문제가 많아 이른 바, '어뢰 스캔들(Torpedo Scandal)'이라는 사건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미 해군의 잠수함 함장들의 강력한 개선 요구와 추가 연구를 총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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