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발진 사고, 조금이라도 줄여볼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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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발진 사고, 조금이라도 줄여볼 수 없을까?
  • 박병하
  • 승인 2023.11.0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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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만 하면 또 다시 전파를 타며 온 국민의 공분과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급발진 의심 사고. 급발진 의심 사고는 자동차가 운전자의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급격하게 가속함으로서 발생하는 사고를 일컫는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내연기관 자동차 뿐만 아니라 최근 많은 양이 보급된 전기자동차에서도 예외 없이 벌어지는 유형의 사고이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급발진 의심 사고는 운전자가 자동차를 통제할 수 있는 제 1요소인 제동장치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기 때문에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강력한 구동력을 가진 전기차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순식간에 최고속도에 가깝게 급가속해버리기 때문에 그 위험성이 더욱 심각하다.

급발진 의심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점은 사고 피해자, 자동차 제조사, 자동차 전문가들의 의견이 갈린다. 일단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자동차 제조사가 급발진 사고 사례를 인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지어 급발진 관련 사고로 인해 미국에서 유례 없는 리콜 사태와 더불어 천문학적인 벌금을 미국 정부에 내야 했던 토요타자동차조차 여전히 해당 사고를 급발진 사고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국내 자동차 제조사의 경우, 사고 직전 일정 시간동안 자동차에 가해진 입력 신호들, 예를 들어 가/감속 페달 조작, 제동등 류의 등화 점등 여부, 주행 속도 등을 기록하는 이벤트 데이터 레코더(Event Data Recorders, EDR)에 기록된 내용대로 발표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의 사고들이 접수되어 EDR 기록을 보게 되면 거의 100% 확률로 가속페달 100%, 혹은 그에 준하는 결과가 나오며, 제동 장치를 조작하고 있음에도 가속페달 조작량 100%, 그러니까 스로틀을 최대로 개방한 상태로 주행했다고만 기록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기계에 오류가 없다는 것을 가정하게 되면, 모든 급발진 의심 사고는 운전자의 조작 미숙으로 인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버린다.

반면, 급발진 의심 사고로 피해를 보게 된 당사자들의 경우에는 자동차에 이상 증상이 발생한다는 것을 대체로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빈번하게 언급되는 사례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동차가 제멋대로 가속하기 시작했다'는 것과 '브레이크 페달이 굳어서 딱딱해진다'는 경우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브레이크가 딱딱해지는 현상은 브레이크 패드 과열로 인해 제동력이 발현되지 못하는 페이드아웃 현상과 유사하다. 

한편, 급발진이 의심되는 사고 사례 및 자료들을 분석하는 자동차 전문가들의 경우에는 의견이 분분하다. 한쪽에서는 의도치 않은 급가속의 원인을 자동차의 두뇌에 해당하는 전자제어장치(Electronic Control Unit, ECU)의 오류로 인한 것으로 추정하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자동차 제조사들과 마찬가지로, 운전자의 조작, 혹은 대응 미숙을 원인으로 지목하는 경우도 있다. 이쪽에서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상당수의 국내 운전자들이 운전 경력에 관계 없이, 차량의 제동성능을 100% 이끌어 내는 '풀 브레이킹(Full Braking)'이라는 것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풀 브레이킹에 한참 못 미치는 제동 조작으로 인해 브레이크의 성능을 적시에 모두 끌어내지 못해 제동에 실패하여 더 큰 사고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특히나 최근에 출시되는 자동차들은 브레이크 입력 신호를 우선적으로 처리하는 BOS(Brake Override System)가 대부분 적용되어, 제동장치가 어떻게든 동력계통에 우선하는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고, 위의 "브레이크가 딱딱해진다"는 현상이 페이드 아웃 현상에 가깝다는 점에 비춰보면, 근거가 아주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외에 국가기관에서 급발진의 원인을 조사하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자동차 제조사가 기술 보안을 이유로 해당 차량에 탑재되는 전자제어장치의 소스 코드를 제공하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보다는 제조사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는 국내의 제조물 책임법도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근본적인 이유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채, 위와 같이 갈라져 있는 의견들이 서로 대립하며, 자동차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된 뉴스나 영상 게시물 등에는 오늘도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특히 급발진 의심 사고 당사자가 고령 운전자나 여성 운전자들의 경우, 상기한 '운전 미숙'을 이유로 2차 가해가 벌어지기도 하며, 미디어에서는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 사고 당사자의 입장만 집중 조명하고 자동차 제조사의 입장은 원천적으로 무시하는 경우도 있다. 

도로교통공단이 지난 2021년 발간한 '고위험군 운전자의 주요 사고원인 분석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의 지속적인 교통사고 감소추세에 반하여 고령운전자에 의해 발생한 교통사고 피해는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특히 고령운전자의 문제와 교통사고에 대해 연구한 사례들을 살펴보면, 기본적으로 노화과정에서는 시력과 청력, 근력 및 지구력 등 신체적인 기능 쇠퇴가 동반되고 감각 및 지각 기능이 쇠퇴함에 따라 고령자의 상황인식 능력이나 정보해석 및 처리능력이 저하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도로교통공단의 교통사고분석시스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3년도부터 지난 10년간 65세 이상 노인운전자 교통사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17,590건이었던 사고 건수는 매해 2~3천건 가량 꾸준히 증가하다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인 2020~2021년의 2년간 3만 1천건 대를 유지하더니, 외부 활동이 서서히 재개된 2022년도에는 34,652건으로 증가했다. 

그렇다면 하다 못해 '운전 미숙'으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만이라도 유의미하게 줄일 수 있는 대책은 없을까? 이 문제에 대해 완전한 정답은 아닐지라도, 그와 상당히 가까운 해법을 적용해 상당한 숫자의 사고를 줄이고 있는 사례가 있다. 바로 우리 보다 앞서서 초고령화 사회에 접어 든 일본의 경우가 그렇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앞서서 초고령화사회에 접어 들었고, 이 때를 기점으로 이러한 사고사례가 크게 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현대-기아자동차의 차량이 급발진 사례가 나타나듯이, 일본에서는 가장 잘 팔리는 모델인 토요타 프리우스에서 이 현상이 보고되어, '프리우스 미사일'이라는 오명을 얻기도 했다.

특히 일본의 고령운전자들이 낸 사고 건수 중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나는 유형은 가속페달을 브레이크 페달로 잘못 인지하고 조작하면서 발생한 사고가 특히 많았다고 한다. 이를 '페달 오조작(ペダル踏み間違い)'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러한 유형의 사고가 고령운전자들에게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본의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이하 ITARDA)가 발간한 페달오조작에 의한 사고 통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와 같은 유형의 사고로 인한 사상자 수가 1만건에 달한다고 한다. 이들은 특히 '차량 對 차량 간 사고'건수에 주목했는데, 여기서는 위와 같은 인식과는 꽤나 다른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경우에는 차량 단독 사고 건수가 압도적으로 높은 데 반해, 차량 대 차량 간 사고건수가 가장 높은 연령대는 다름아닌, 24세 이하 운전자였기 때문이다. ITARDA는 이러한 결과가 나온데 대해 "고령자에 의한 페달 오조작 사고는 분명히 주목할 정도로 높지만, 운전 경험이 부족한 젊은층 역시 페달 오조작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한다.

이로 인해 일본의 양산차 제조사들에서는 2010년대 중반을 전후해 이 페달 오조작에 의한 사고를 방지하는 안전장치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근래에는 경차부터 일반 승용차까지, 일본 내수 시장에 판매되는 자동차들은 사실 상 차종을 불문하고 의무적으로 이러한 장치들이 탑재되고 있는 추세다. 일본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으로 신차로 출고되는 차량들 가운데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가 탑재된 차량의 비율은 94.8%에 달하고 있다.

일본 내수 시장에서 통용되고 있는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는 대체로 차량 전/후방에 설치되는 주차센서를 활용해 전/후방에 벽면이나 장애물이 있다고 인식하는 경우, ECU가 엔지의 연료공급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따라서 정지, 혹은 그에 준하는 상태에서만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보다 발전된 형태로는 장애물 감지시 ECU를 통한 연료차단은 물론, 제동장치까지 가세하게 만들어 보다 확실하게 가속페달 오조작에 따른 오발진 현상을 억제할 수 있다. 그리고 나아가 특별하게 설정된 전용의 스마트키를 소지하고 탑승하는 경우, 전/후방에 장애물이 없어도 가속을 억제하는 개념도 등장했다. 이 뿐만 아니라 기존에 이러한 장치가 제공되지 않았던 구형의 차량에도 적용이 가능한 액세서리 형태로 만들어진 제품도 출시된 바 있다.

이와 같은 개념은 혼다기연공업이 선보인 시스템으로, 자사의 능동안전장비 패키지인 혼다센싱과 연동이 되어 있다. 혼다의 급가속억제기능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게 되면 ECU가 현재의 차량속도와 전/후 가속도, 기어단수 등, 차량의 여러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하여 '의도하지 않은 급가속'이라고 판단하게 되면, 운전자에게 정상적인 범주의 가속이 아님을 경고하고, 차량의 가속을 직접 제어한다. 특히 능동안전장비인 혼다 센싱과 연계되어 있는 시스템이기에, 전/후방에 장애물이 있는 경우에도 종래의 페달 오조작 방지 기능 대비 대응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또한 전방의 신호로 인해 선행차량이 정지해 있는 경우에 가속페달 조작시 ECU가 개입해 가속을 억제하는 것 뿐만 아니라 제동까지 함꼐 수행할 수 있는 구조로 짜여져, 더욱 안전한 운행환경을 제공한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러한 형태의 가속페달 오조작 방지장치, 혹은 급가속 억제장치를 도입하기 시작한 이래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토요타자동차는 ITARDA의 사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독자적으로 분석한 결과, 추돌사고에 대해서는 자사의 능동안전장비(Toyota Safety Sense)를 탑재한 차량이 약 50%, 능동안전장비와 가속페달 오조작 방지 기능을 동시에 탑재한 차량은 약 90%가량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토요타자동차만의 독자적인 발표내용이므로 저 수치를 곧이 곧대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이렇게 가속페달 오조작에 따른 가속을 억제하는 기능은 국내 시장에서도 도입할 만한 가치가 충분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현재 그 일본보다도 고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노인 운전 인구도 그에 따라 매년 증가하고 있다. 특히 노인 인구가 많은 구도심 등지에는 좁은 길이나 주차장 등, 일본의 도심과 유사한 환경이 적지 않다. 게다가 2013년부터 2018년까지 6년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접수된 '급발진 추정 사고'로 접수된 269건 중 203건이 '페달 오조작' 사고로 밝혀진 바 있다. 따라서 국내 자동차 제조사들도 EDR 기록만 달랑 내놓고는 사고 당사자를 '운전 미숙'이라고 몰고 책임회피만 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방식으로라도 안전장치를 하나라도 더 마련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지금이라도 이러한 장치의 개발 및 도입을 진지하게 고민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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