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포드와 모터스포츠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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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포드와 모터스포츠의 인연
  • 모토야
  • 승인 2024.02.02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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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드 모터 컴퍼니의 창립자 헨리 포드(Henry Ford)는 1901년 세계 스윕스테이크 챔피언십(World Championship Sweepstakes)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레이싱과 깊은 인연을 맺어 왔다. 챔피언십 우승은 헨리 포드가 회사를 설립할 투자자를 확보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투자 유치라는 목표를 달성한 그는 다시는 레이싱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3년 후 헨리 포드는 또다시 레이싱 기록 경신을 목표로 운전석에 앉게 된다.

 

포드 999의 탄생

 

999의 개발은 회사 설립 초기, 브랜드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헨리 포드의 전략이었다. 챔피언십 이후 헨리 포드는 자전거 레이싱 챔피언으로 활약하고 있던 톰 쿠퍼(Tom Cooper)와 함께 애로우(Arrow)와 999라는 경주용 자동차를 개발한다. 999의 이름은 당시 뉴욕과 시카고 사이를 운행했던 고속철도, 뉴욕 센트럴 열차에서 차용했다. 999는 단순한 형태로 스피드에만 초점을 맞춘 모델이었고, 운전석이 엔진 뒤에 있는 프레임에 장착되어 있었다. 또한 스티어링 휠이 아닌 레버를 통해 운전이 가능했다.

 

 

 

999의 총 길이는 3미터에 가까웠고, 기존 미국에서 활동하던 경주용 자동차보다 휠베이스와 트레드의 크기 역시 컸다. 18.5L의 4기통 엔진은 70마력의 출력을 자랑했고, 그 크기 때문에 999는 바퀴가 달린 대형 엔진처럼 보였다고 전해진다.

 

한파가 덮친 어느 추운 날, 레이싱에 나선 999

 

 

 

헨리 포드는 이번 레이싱 경기에서 처음으로 999를 몰게 된다. 다만, 1902년 바니 올드필드(Barney Oldfield)가 미시간 주 그로스 포인트 경기장에서 999를 몰고 미국 경주 기록을 세운 덕분에 999는 이미 세계 최고 경주용 자동차 반열에 올라 있었다.

 

1904년 1월 12일, 한파가 덮친 추운 날씨에 약 100명의 관중이 디트로이트의 세인트클레어 호수 주변에 모였다. 그들 중 일부는 999의 엔진 배기음 소리를 듣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이를 두고 헨리 포드는 “999 실린더의 굉음만으로도 관중들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헨리 포드의 999는 얼어붙은 빙판 위에서 시속 60마일(약 97km)로 레이스를 시작했고, 계속 속도를 높여 시속 90마일(약 145km) 이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는 자동차가 시속 90마일을 넘은 최초의 순간이었다.

 

헨리 포드는 당시를 회상하며 "얼음장 같은 바람 때문에 눈을 거의 반쯤 감고 있어야 했다"고 말했다.

 

헨리 포드의 시속 91.37마일(약 147km) 달성 기록은 단 2주 동안만 유지되었지만, 이 사실이 포드 모터 컴퍼니의 광고에 활용되면서 회사에 막대한 이익을 가져다줬다. 포드 999는 여전히 미국 헨리 포드 박물관(Henry Ford Museum of American Innovation)에서 만나볼 수 있다. 한편, 2007년 포드는 수소 연료 전지로 구동되는 포드 퓨전(Ford Fusion)으로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 포드 퓨전은 미국 유타주 보네빌 솔트 플랫(Bonneville Salt Flats)에 위치한 경기장에서 시속 207마일(333km)을 기록하며 양산형 연료 전지 자동차의 속도 기록을 갈아 치웠다.

 

포드는 헨리 포드의 정신을 계승하며 현재까지 자동차와 모터스포츠 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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