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없어진 자동차 기업들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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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없어진 자동차 기업들 - 상편
  • 박병하
  • 승인 2024.03.07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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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프랑스의 산업에서 떠올리는 것들은 주로 패션 쪽의 명품 브랜드와 와인 등, 사치재들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산업에서 사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중화학공업'이다. 특히 수출구조 면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름아닌 항공/우주(4.38%, 2022년 OEC 기준) 분야이며, 그 다음은 의약품(4.29%), 그리고 그 다음 가는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자동차(3.5%)'다.

한편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은 프랑스계 기업들이 대부분 진출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이나 영국, 미국 등에 비해 인지도가 다소 낮은 편이다. 하지만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은 앞서 언급한 두 국가에 비해 규모는 물론, 역사적인 면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으며, 오히려 자동차 역사의 초기에는 이들 못지 않은 기술혁신을 주도하기도 했다.

오늘날에도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은 항공우주 산업과 함께, 국가의 중요한 전략 산업 중 하나다. 프랑스는 세계 11위의 자동차 생산국이며, EU 내에서는 독일과 스페인 다음으로 많은 자동차를 생산한다. 모터스포츠 분야에서는 단일 이벤트 기준으로 포뮬러 1을 넘어서는 르망24시 레이스를 비롯해, 포뮬러 1의 주관 단체인 국제 자동차연맹(Federation Internationale de l'Automobile, FIA)의 본부도 프랑스 파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프랑스의 자동차 산업은 그 오래된 역사 만큼이나 다양한 제조사들이 존재했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전세계의 최고급 자동차 다수는 영국도, 독일도 아닌 프랑스에서 만들어졌다. 심지어 스페인에 적을 두고 있었던 최고급 자동차 제조사 이스파노-수이사(Hispano-Suiza)도 고급 자동차 생산 시설만큼은 프랑스에 두었을 정도이며, 지금도 남아 있는 세계 최고급 하이퍼카 제조사 부가티(Bugatti)도 프랑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수많은 기술혁신을 주도하며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다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사치재로서의 자동차 보다는 대중을 위한 이동수단으로서의 가치를 중시했던 프랑스 정부의 자동차산업 개편 정책으로 인해 고급 자동차 브랜드는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과 같이 대중 브랜드가 주류를 이루는 구조로 변화하게 되었다. 1백년을 훌쩍 넘는 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역사에 등장했던 제조사들을 돌아본다.

드 디옹-부통(De Dion-Bouton, 1883~1931)
프랑스 자동차 산업의 개척자, 드 디옹 후작 쥘-알베르(Jules-Albert de Dion1856~1946)와 엔지니어 조르주 부통(Georges Bouton, 1847-1938)과 샤를 트레파르두(Charles Trépardoux 1853~1920)가 공동으로 설립한 이 회사는 초기에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아닌, 증기기관을 탑재한 증기자동차로 자동차 사업을 전개했다. 그리고 이 때 완성한 증기 자동차로 1887년, 파리-루앙 구간을 완주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또한 자동차의 성능과 승차감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를 거듭하며, 기존의 고전적인 리지드액슬 방식에 비해 크게 개선된 드디옹 액슬(De Dion Axle)을 개발하기도 하는 등, 기술 혁신을 보여주었다.

그러다 20세기 들어, 내연기관의 성능이 향상되기 시작하면서 드 디옹-부통은 주력 동력원을 증기기관에서 내연기관으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1895년, 코일점화장치를 적용한 137cc 단기통 가솔린 엔진을 직접 개발하고, 이를 탑재한 삼륜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9세기가 끝나갈 무렵부터 사륜차로의 전환을 준비하며 1900년에 402cc 엔진을 탑재한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1900년 드 디옹-부통은 연간 400대의 자동차와 3,200대의 엔진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자동차 제조사였으며, 다른 자동차 회사에게 자사의 엔진과 설계 라이선스 등을 판매하는 형태로 사업을 키워나갔다. 하지만 제 1차 세계대전의 여파와 변화하는 자동차 산업의 양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1930년대에 파산하고 만다.

파나르(Panhard et Levassor, Panhard, 1887~1968)
1889년 르네 파나르(René Panhard, 1841~1908)와 에밀 르바소(Émile Levassor, 1843~1897)가 공동 창업한 이 회사는 자동차와 엔진 생산을 중점으로 한 회사로 시작되었다. 독일의 고틀리프 다임러(Gottlieb W. Daimler, 1834~1900)와 협력해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뿐만 아니라 로터리 밸브 엔진(Rotary Valve Engine)을 처음 도입하고, 1895년 세계 최초의 클러치 페달이 적용된 수동변속기를 개발하며 자동차의 성능과 효율을 크게 올리는 혁신을 이룩하며 주목 받았다.

그리고 파나르는 이 기술을 활용한 경주용 자동차들을 잇달아 내보내 이름을 알리며 고급 자동차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확보했다. 제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트럭 등, 군용차량 생산으로 전환했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는 프랑스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고급 자동차 대신 저가형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가 경영난에 빠져 승용차 부문은 시트로엥에, 화물차 부문은 르노 트럭에게 인수되어 사라졌다.

들라이예(Delahaye Automobile, 1894~1954)
들라이예는 1894년 에밀 들라이예(Émile Delahaye, 1843~1905)가 창업한 자동차 제조사로, 창업 초기에는 자동차 보다는 기계, 엔진, 자전거, 오토바이 등을 제조했다. 들라이예는 1896년부터 프랑스에서 개최된 자동차 경주에 자신이 제작한 자동차로 참가해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고, 1897년, 첫 번째 양산차 모델인 '들라이예 6CV 타입 0(Delahaye 6CV Type 0)'를 출시하며 본격적인 자동차 제조사로서의 행보를 시작한다.

레이스에서 좋은 성적을 거둔 들라이예의 차는 기술력을 인정받고 판매가 늘기 시작했으며, 1930년대에는 뛰어난 성능과 아름다운 외관을 지닌 고급 자동차 제조사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고 1937년 열린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들라이예 145로 우승을 거두며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영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1954년 호치키스(Hotchkiss et Cie)에 인수합병되어 사라지게 되었다.

로렌-디트리히(Lorraine-Dietrich, 1896~1935)
로렌-디트리히는 항공기 및 엔진 제조업체로 사업을 시작해 자동차, 철도 기관차 등, 다양한 이동수단을 제작했던 기업이다. 이들은 1896년, 다양한 증기자동차를 설계한 설계자 아메데 볼레(Amédée-Ernest Bollée 1844~1917)의 내연기관 자동차 설계를 사들이면서 자동차 사업을 개시했다. 그리고 1898년에는 자체 개발한 자동차로 파리와 암스테르담을 오가는 자동차 경주에 참가했다. 이들의 자동차는 직렬 4기통 엔진과 전륜 독립식 서스펜션을 갖춘 차량이었고, 이 차를 토르피유(Torpilleur)라는 이름으로 양산하기 시작하며 자동차 제조사로서의 활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1902년, 당시 21세였던 천재 설계자 에토레 부가티(Ettore Bugatti)를 채용해 디트리히 부가티(Dietrich-Bugatti) 시리즈를 생산하며 고급 자동차 제조사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그러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게 되면서 이들은 항공기 엔진 부문으로 사업을 전환했다가 전쟁 이후 다시 자동차 사업으로 복귀, 1925년과 26년에 2년 연속으로 르망 24시 우승을 따내는 등, 그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경제 대공황과 전쟁의 여파로 인해 1935년, 로렌-디트리히는 항공기 엔진 및 부품 제조사로 전환하며 자동차 사업에서 철수했다.

셰나르-월커(Chenard-Walcker, 또는 Chenard & Walcker, 1899~1946)
셰나르-월커는 자전거 및 오토바이 제조업체로 시작하여 자동차 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기업이다. 이 회사는 고급 자동차를 지향했던 위의 제조사들과는 다르게, 저렴하고 실용적인 소형 차량과 트럭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를 위해 여러 혁신을 시도한 바 있다. 이들이 내놓은 첫 차는 1900년에 출시한 '타입 A'로 독자적인 4단 기어박스와 2기통 1,160cc 엔진과 뒷바퀴굴림 방식을 적용한, 당시로서는 상당히 현대적인 구조의 자동차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성능도 우수했던 셰나르-월커의 자동차는 프랑스의 택시 사업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1910년에 이르러 셰나르-월커는 연간 1,500대 이상의 자동차를 생산하는 제조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항공기 엔진과 트럭 생산에 주력하였고, 전쟁이 끝난 이후인 1925년에는 프랑스에서 4번째로 큰 자동차 제조사로 거듭나게 되었다.

그러나 셰나르-월커의 전성기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유럽의 자동차 제조사들도 포드식의 대량생산 시스템을 도입하기 시작하면서 수작업 라인생산을 고집하는 바람에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셰나르-월커는 1936년 파산, 프랑스의 자동차 부품회사인 쇼송(Chausson)에 인수되었다. 이후 셰나르-월커는 포드의 프랑스 합자회사인 맷포드(Matford)의 차량을 기반으로 한 차들을 제작하며 근근히 연명하다가 제 2차 세계대전을 거쳐, 1940년대 말, 쇼송이 푸조에 흡수되면서 브랜드 자체가 사라지는 운명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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