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술로 재창조된 클래식카 양대 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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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기술로 재창조된 클래식카 양대 산맥
  • 박병하
  • 승인 2019.11.19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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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명차는 잊혀지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되며 세대를 넘어 끊임없이 새로운 추종자를 만들어 낸다. 역사에 남은 명차는 단순히 해당 제조사의 유산에 그치지 않고 제조사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전 세계에는 이 연결고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이들이 하는 일은 명차를 보존하고, 복원해내는 일도 있지만, 현대적인 접근법을 통해 다양한 명차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오래된 자동차를 복원하는 '리스토어'라는 개념이 조금씩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자동차 역사가 오래된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나라에서는 오래된 자동차를 복원하는 문화가 대중화되어 있는 편이다. 또한 단순히 옛날에 있었던 차를 복원하는 것 뿐만 아니라 최신 기술의 도움을 받아 새로운 방향으로 ‘재창조’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차는 단순한 레플리카(복제품)나 복각판이 아니다. 오리지널이 가지고 있었던 정신을 현대의 기술로 새롭게 재창조함으로써 어떤 차와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을 지닌다.

이렇게 고전과 현대의 절묘한 만남으로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채 태어난 차들이 두 대가 있다. 바로 ‘싱어 비히클 디자인(Singer Vehicle Design, 이하 싱어)’의 포르쉐 911과 ‘이글(Eagle)’ 의 재규어 E-타입이다. 이들이 만드는 차는 기본적으로 오리지널의 섀시와 부품을 사용한다. 그러면서도 엔진, 변속기 등의 주요 부품과 디테일, 그리고 마감은 반세기는 더 지난 오늘날의 기술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골수 포르쉐 마니아의 ‘팬’ 하나로 완성되다 – 싱어 911

반세기가 넘도록 변함 없는 스타일, 후방배치 후륜구동, 짜릿할 정도로 기계적이고도 정확한 핸들링, 그리고 공랭식 6기통 박서 엔진. 이러한 요소들은 이른 바 포르쉐파일(Porschephile)이라 불리는 옛 포르쉐 911의 골수팬들이 911에게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수랭식 엔진과 전동식 파워스티어링을 사용하고, 날이 갈수록 자꾸 몸집이 커져만 가는 오늘날의 포르쉐 911이 영 탐탁치 않다.

물론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생존을 위해 변화를 거듭한 결과이며, 그 덕분에 911은 반세기가 넘도록 그 역사를 이어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눈에 코드네임 996 이후의 911들은 그들이 말하는 ‘오리지널’과는 이미 한참 멀어졌다. 심한 경우에는 공랭식 엔진을 포기한 996 이후의 911들을 숫제 ‘이단’ 취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싱어의 911은 이들의 현실감각 쏙 빠진 ‘덕후감성’을 핀 포인트로 저격하고 있다. 이 차는 그들이 사랑해 마지 않을 964의 섀시를 기반으로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된 911이다. 그리고 그 안에 이들이 그토록 원하고 사랑하는 것들만 쏙쏙 골라 꾹꾹 눌러 담았다.

싱어는 포르쉐911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영국 출신의 가수 롭 디킨슨(Rob Dickinson)이 미국에 세운 소규모 제작사다. 회사의 이름이 ‘싱어’인 이유도 가수 출신인 그의 이력과 더불어 911의 공랭식 6기통 박서엔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소음을 일종의 ‘음악’으로 여기는 그의 시선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만의 911을 갖기 위해 스스로 964를 복원하다가 이를 사업으로 전환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그가 얼마나 포르쉐 911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나만의 차를 갖기 위해 시작한 일이 사업으로까지 전환하게 된 배경에는 자신의 911에 매료된 이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싱어의 911은 기본적으로 새롭게 생산하는 모델이 아닌, 기존에 만들어진 차량을 복원하고 여기에 튜닝을 거친 일종의 튜닝카에 가깝다. 싱어의 911은 89년도부터 93년도까지 생산된 코드네임 964의 섀시를 기반으로 만들어진다. 따라서 싱어의 911을 손에 넣기 위해서는 중고 포르쉐 964가 필요하다. 여의치 않다면 최소한 온전한 상태의 964 섀시가 필요하다. 포르쉐 964의 섀시는 현대에 등장했던 911들 중에서 클래식 911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모델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료(?)인 964는 원칙적으로 구매자가 직접 구해 와야 한다. 물론 싱어에 맡기는 방법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상당한 추가 비용이 들어간다.

싱어 911의보디패널은 모두 카본파이버로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기존의 964에서 무려 280kg에 달하는 무게를 덜어 낸다. 외관의 디테일은 클래식한 외양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 내부는 최신 기술로 이루어진 제품들이 사용된다. 엔진은 코즈워스(Cosworth)에서 공급하는 3.8리터 및 4.0리터 자연흡기 '공랭식' 6기통 박서 엔진이다. 4.0리터 사양의 엔진은 자연흡기로 390마력에 달하는 최고출력을 발휘한다. 변속기는 게트락(Getrag)에서 공급하는 5단, 혹은 6단 수동변속기를 사용한다. 4.0리터 엔진을 탑재한 싱어 911은 0-100km/h 가속을 불과 3.3초에 끝낼 수 있는 순발력을 자랑한다. 공랭식 박서 엔진만의 덕후감성 충만한 배기음은 골수 911 팬보이의 정신줄을 놓게 만들어 줄 수 있다.

싱어의 911은 모두 오너 개인의 취향이 100% 반영되어 있는 결과물들이지만, 어떤 차량이건, 보는 순간부터 그야말로 60~70년대의 911을 연상케 하는 외양을 갖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빵빵한 쿼터패널은 싱어 911의 가장 큰 매력포인트이며, 엔진 리드의 경우, 가변식 스포일러나 고정식 스포일러를 선택할 수 있다.

싱어 911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최소 개조비용으로만 무려 35만 달러(한화 약 4억 862만원) 이상의 비용을 필요로 한다. 이는 주 재료인 964의 가격은 빠져 있는 가격이며, 주문자의 요구에 따라 가격은 더욱 치솟는다.

21세기의 기술로 재창조된 명차 - 이글 E-타입

재규어의 E-타입은 재규어의 역사에 길이 남을 히트작이자 첫 출시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도 회자되는 명차다. 재규어 E-타입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자동차로 기네스 북에 오른 XK120으로부터 시작된 재규어 스포츠 쿠페의 혈통을 잇는 모델로, 아름다운 외양과 놀라운 성능으로 영국 자동차 산업의 황금기를 장식했다.

재규어 E-타입은 지금도 매혹적인 외관을 가졌다. 우아함과 섹시함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외관은 50년대 르망 레이스를 호령하던 경주차인 C-타입과 D-타입의 요소들을 참고한 것이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항공기 엔지니어 출신인 말콤 세이어(Malcolm Sayer)가 맡았다. 주행 성능도 선조들만큼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안락한 승차감을 갖춰 GT카로서의 면모도 가졌다. 재규어 E-타입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총 7만 2,500여대가 팔려 나간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재규어 E-타입은 그 아름다운 외양과 놀라운 성능으로 영국 자동차 산업의 황금기를 장식한 자동차로서 오늘날에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 때문에 클래식카 경매 등에도 적지 않은 수가 거래되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그 수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잉글랜드 동남부의 이스트 서식스에서 재규어 역사 상 가장 기념비적인 모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이들의 이름은 이글(Eagle). 1982년 세워진 이글은 E-타입을 복원하여 판매하는 사업을 주로 벌여 왔다. 이글은 수 십년 간 같은 차를 복원해 오는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기술력을 통해 사소한 등화류 하나하나까지 꼼꼼하게 복원된다. 이글의 E-타입에 대한 집념은 이후, 아예 자동차 하나를 새로 만들 수 있을 정도의 기술적 역량을 쌓아 올린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단순히 E-타입의 복원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E-타입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글 스피드스터(Speedster)와 이글 로우 드래그 GT(Low Drag GT), 그리고 스파이더 GT(Spyder GT)다.

이글 스피드스터는 재규어 E-타입 컨버터블 모델에 대한 이글의 오마주이자, 현세의 옷을 입고 다시 태어난 E-타입이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들이 하는 것과 같은 대대적인 현대화를 가한 것은 아니다. 그들의 E-타입은 말콤 세이어가 디자인한 그 당시의 형상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또한 고전적인 크롬 장식을 상당히 배제하여 분위기가 매우 깔끔하다. 이 때문에 그들의 선조인 C타입과 D타입이 오버랩되기도 한다.

이글 스피드스터는 컨버터블 E-타입의 윈드스크린과 소프트 톱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한참 낮은 높이의 전용 윈드스크린을 얹었다. 소프트톱이 떨어져 나간 자리는 독자적인 디자인의 패널로 마무리했다. 단, 차체는 오리지널이 그러했던 것처럼, 모두 알루미늄 합금으로 제작된다. 오랫동안 E-타입을 복원해 온 경험 덕분이다. 심지어는 차체 뒤쪽에서 앞으로 향해 열리는 보닛 힌지의 움직임까지 같다.

이 뿐만이 아니다. 엔진 역시 자체개발한 것을 사용한다. 그들의 엔진은 4.7리터 배기량의 알루미늄 블록 직렬6기통 엔진이다. 이 엔진의 원형은 E-타입의 XK계열의 직렬 6기통 엔진으로, 여기에 직분사 기구까지 설치했다. 서스펜션과 브레이크, 심지어 헤드램프를 비롯한 등화류 및 각종 전장품에 이르는 모든 구성품은 오늘날의 기술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실내 역시 60년대의 E-타입을 대부분 보존하고 있다. 룸미러는 대시보드 위에 붙어 있고, 대시보드는 하나의 금속판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외형은 한없이 클래식에 가깝지만, 그 안의 구성품 하나하나는 모두 현대의 기술로 재창조된 것들이다. 특히 좌석은 이글의 오리지널 다지인이면서도 클래식의 감성이 진하게 묻어난다.

그들의 또 다른 작품인 로우 드래그 GT는 스피드스터의 쿠페 버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단순히 지붕만 씌운 것이 다가 아니다. 지붕의 형상은 측면에서 보았을 때 미끄러지듯 유연하게 흐르는 극단적인 패스트백형 라인을 보여주며, 오리지널 양산형 E-타입의 지붕과는 크게 다르다.

이 아름다운 외형의 루프는 1962년, E-타입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경주용 자동차, ‘컴피티션 로우 드래그’의 차체 형상을 재현해 낸 것이다. 휠의 경우, 일견 스틸휠로 보일 수 있지만 엄연히 알루미늄 합금으로 만들어진 전용 알로이 휠이다. 이 휠의 허브캡는 고전적인 스타일의 스피너로 마무리하여 클래식 감성을 완성한다. 로우 드래그 GT는 2+2 좌석 배치를 가졌던 오리지널 E-타입과는 달리, 2인승 좌석 구조를 갖는다.

이 외에도 오리지널과 같은 접이식 소프트톱이 설치된 스파이더 GT(Spyder GT)도 존재한다. 이 차는 오리지널 E-타입 컨버터블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보다 전통에 가까운 차다. 또한, 구매자의 요구에 따라, 오리지널 E-타입 쿠페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GT 쿠페 모델 역시 제작된다. 하지만 그 속살은 위의 두 차종과 같이, 오늘날의 최신기술들로 채워진다. 원형은 그대로, 내용물은 최신 기술과 고급 소재를 듬뿍 넣어 마무리한 이글의 E-타입들은 현대적으로 복각된 E-타입 그 자체다.

21세기의 기술로 다시 태어난 이글의 E-타입들은 철저하게 주문생산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구매자가 원하는 사양으로 꾸며 온전히 자신만의 E-타입을 가질 수 있다. 올린즈의 최신형 서스펜션을 적용할 수도 있고, 자신만의 외장색상이나 소재 선택도 가능하다. 가격은 스톡 차량을 기준으로 약 50만 파운드(한화 약 7억 5,618만원)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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