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피아트 판다(Tipo 141) – 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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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피아트 판다(Tipo 141) – 하편
  • 박병하
  • 승인 2019.11.1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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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를 기점으로 세계의 자동차 업계가 큰 파장을 겪었다. 두 차례에 걸쳐 벌어진 오일쇼크(석유파동) 때문이다. 그동안 대배기량의 중대형 차종을 주력으로 하고 있었던 미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이 때를 기점으로 그 위세가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시기를 전후하여 소형차를 주력 상품으로 내걸고 있었던 일본의 자동차 업계가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쇼크’라는 단어가 통할 정도로 치솟은 유류비로 인해 세계의 자동차 시장은 작고 경제적인 자동차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리고 너도나도 ‘더 작고’, ‘덜 먹는’ 소형차 개발에 뛰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소형차의 전통이 있어 왔던 유럽조차도 더욱 경제적인 소형차의 개발에 박차를 가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과 마주하고 있었다. 심지어 창사 초기부터 소형차를 주력으로 사업을 진행해 오고 있었던 이탈리아 피아트(FIAT)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피아트의 대표 소형차 브랜드, 판다(PANDA)가 탄생하게 되었다.

오늘날 3대를 이어 오고 있는 피아트 판다의 1세대 모델은 1979년, 이탈리아 언론에 먼저 공개되었다. 그리고 이듬해 열린 1980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되어 판매되기 시작한다.

초대 피아트 판다는 정말 ‘작은’ 자동차다. 오늘날 유럽식 A세그먼트를 구체화하기 시작한 초대 피아트 판다는 3도어 해치백 형태의 차체를 가졌다. 크기는 길이 3,380mm에 폭 1,460mm, 높이는 1,445mm에 불과했다. 이는 개정 이전 대한민국의 경차 규격인 3,500x1,500x2,000mm 보다도 더 작은 것이다. 심지어 지금도 빡빡하기로 악명 높은 일본의 경차 규격인 3,400x1,480x2,000mm 마저 충족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물론, 1980년대 당시 일본 경차 규격은 피아트 판다의 크기보다도 더욱 작았기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는 소형차로 분류될 정도였지만 말이다.

피아트 판다는 출시 초기인 1980년도에는 두 가지 가솔린 엔진이 준비되었다. 그 중 하나는 피아트 126에서 가져온 652cc 공랭식 직렬 2기통 엔진으로, 전륜구동 자동차로서는 독특한 세로배치 엔진이었다. 다른 하나는 피아트 127에서 가져온 903cc 배기량의 수랭식 직렬 4기통 엔진이었다. 903cc 엔진은 가로로 장착되었다. 652cc 엔진을 장착한 판다는 ‘판다 30’이라는 이름으로, 903cc 엔진을 장착한 판다는 ‘판다 45’라는 이름으로 판매되었다. 판다는 첫 공개 후 2개월 만에 7만 대가 넘는 주문이 몰렸다.

출시 후 2년이 지난 1982년도에는 피아트 850에 쓰인 843cc 수랭식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한 ‘판다 34’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차명 뒤에 붙는 숫자는 ‘최고출력’을 의미한다. 그리고 같은 해 열린 파리모터쇼를 통해 외관 및 편의사양을 대폭 증강한 ‘판다 45 수퍼’ 모델을 공개하며 라인업을 넓혔다. 판다 45 수퍼는 5단 변속기와 기존의 비대칭형 그릴 대비 더욱 세련된 디자인의 블랙 라디에이터 그릴을 적용하였다. 라디에이터 그릴 중앙에는 크롬으로 도금 처리된 피아트의 사선형 엠블럼이 적용되었다. 이듬해에는 판다 30 모델에도 새로운 디자인이 적용되기 시작했다.

1983년도에는 새로운 모델이 추가되었다.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한 ‘판다 4x4’가 그것이다. 판다 4x4는 가로배치 전륜구동 기반의 차종으로는 세계 최초로 사륜구동 시스템을 적용한 선진적인 설계가 돋보인다. 판다 4x4는 48마력의 출력을 내는 965cc 수랭식 직렬 4기통 엔진을 탑재했다.

사륜구동 시스템은 파트타임 방식으로, 1단 레인지를 저속 기어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평상시 출발 가속을 하는 경우에는 과거 1톤 화물차처럼 2단에서 출발해야 했다. 뛰어난 소형화설계로 피아트 판다의 작은 몸집에도 적용 가능한 이 사륜구동 시스템은 오스트리아의 자동차 및 방산 기업, 슈타이어-푸흐(Styer-Puch)와의 공동 개발로 만들어졌다. 슈타이어-푸흐는 오늘날 ‘마그나 슈타이어’의 전신으로 1970년대부터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아우디, 크라이슬러 등 다양한 기업의 차량을 위탁 생산해 오고 있다. 또한 메르세데스-벤츠의 오프로더 SUV 모델인 ‘G-클래스’의 생산사로도 유명하다. 피아트 판다는 1984년 7월에는 100만 대 판매를 돌파하는 등, 높은 인기를 구가했다.

초대 피아트 판다는 생산이 시작된 지 6년 만인 1986년도에 한 차례 페이스리프트를 거쳤다. 이 페이스리프트를 통해 판다는 외관 디자인은 물론, 파워트레인과 상품 구성 등 많은 부분을 일신했다. 엔진의 경우, 기존에 생산하고 있었던 가솔린 엔진은 ‘파이어(FIRE, Fully Integrated Robotized Engine)’라는 이름의 신형 엔진으로 교체했다. 파이어 엔진은 공정 전체에 ‘로봇’을 이용한 자동화를 달성한 엔진이다. 피아트 판다에 적용된 파이어 엔진은 769cc 사양과 999cc의 사양의 두 가지로, 직렬4기통 수랭식 SOHC 방식을 채택했다. 이 외에도 1.3리터(1,301cc)의 디젤 엔진이 새롭게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 때부터 기존에 사용하던 출력 유래의 트림명을 배기량에서 유래한 750/1000으로 변경했다.

섀시 면에서도 진일보했다. 1986년도부터는 후륜 서스펜션에 기존의 리지드 액슬(리프 스프링) 방식 대신 새롭게 개발한 토션 빔 서스펜션을 적용했다. 판다에 적용된 신형 토션빔 서스펜션은 독특한 오메가(Ω) 형태의 트레일링 암 링크 구조가 특징이다.

아울러 ‘수퍼’ 모델에만 적용되었던 시트와 신규 그릴을 모든 트림에 확대 적용했다. 기존의 저가형에는 일반적인 자동차용 시트가 아닌, 거의 해먹에 가까운 구조의 전용 시트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이는 피아트 판다의 낮은 가격에 일조하는 측면도 있었지만 장시간의 승차가 불편했다. 따라서 시트의 개선은 편의성 측면에서 상당한 발전이었다. 아울러 계기반의 크기를 키우는 한 편, 앞좌석 측면 도어의 삼각창도 폐지하고 일체형으로 교체하는 등, 차량 전반에 걸쳐 한 단계 고급화가 이루어졌다. 이 때부터 생산되기 시작한 피아트 판다는 ‘세리에 2(Seconda serie)’로 불리게 되었다. 세리에는 이탈리아어로 ‘시리즈’, 내지는 영어의 ‘Batch’와 유사한 의미다. 영미권에서는 ‘마크2(Mk.II)’로 부르기도 한다.

또한 1990년, 피아트는 판다를 기반으로 한 순수 전기자동차 모델, 판다 엘레트라(Elettra)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는 초기의 전기자동차 중 하나로 꼽히는 GM의 ‘EV1’보다도 훨씬 먼저 시장에 등장한 전기자동차로, 사양에 따라 19마력(14kW)과 23.8마력(18kW)의 모델이 존재했다. 이는 초대 판다의 단순하기 이를 데 없는 구조 덕분에 일반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전기차로의 변환이 상대적으로 용이했기 때문이다.

이 차는 오늘날의 전기차와는 달리, 상대적으로 저출력의 모터를 사용했고, 일반적인 납축전지를 사용하여 만들어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금과 같은 충전관련 솔루션이 부실했던 탓에, 완전충전에는 8~10시간이나 걸렸다. 가격은 2,560만 리라에 달했는데, 이는 판다 750 모델 3대분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이 차는 지나치게 비싼 가격과 부족한 성능 및 편의성 탓에 비록 상업적으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선진적인 시도였다.

1991년도에는 또 한 차례의 페이스리프트가 이루어졌다. 두 번째 페이스리프트에서는 새로운 5줄 사선형의 피아트 엠블럼이 적용된 가로 바형 라디에이터 그릴이 적용되었고, ‘셀렉타(Selecta)’라는 이름을 가진 새로운 변속기가 추가되었다. 이는 전자기식 클러치를 사용하는 무단변속기(Continuously Variable Transmission, 이하 CVT)로, 촉매 변환기 및 SPI(Single-Point fuel Injection) 연료분사 기구가 적용된 999cc 파이어 엔진에 적용 가능했다. 또한 유로 I 법안의 통과와 함께 촉매가 장착되지 못한 769cc 엔진은 모두 단종되었으며, 새로운 전자식 연료분사 기구를 적용한 신규 899cc 엔진이 추가되었다.

피아트 판다는 출시 된 지 10년이 훌쩍 지났음에도 저렴한 가격과 유지보수의 편리함 등으로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렸다. 또한, 이러한 이유로 패널밴 형태의 상용차량 또한 만들어졌다. 피아트 판다의 패널 밴 모델은 승용 모델과는 달리, C필러 부위를 더욱 늘려서 수직에 가까운 형상으로 빚어진 것이 차이점이다. 단순한 구조와 저렴한 가격으로 오랫동안 사랑 받은 초대 피아트 판다는 2003년까지 배기가스 규제에 대응하기 위한 몇 가지 변경을 거쳐가며 꾸준히 판매되었다가, 2세대 판다(Tipo 169)에 자리를 내주고 단종을 맞았다.

피아트 판다는 스페인의 세아트(SEAT)에서도 생산된 바 있다. 세아트가 피아트에 라이센스를 취득하여 생산하기 시작한 ‘세아트 판다(SEAT Panda)’는 1986년도까지 생산되었다가 1987년도부터 마르벨라(Marbella)라는 새 이름과 더불어 약간의 디자인 변경을 거쳐 1998년도까지 생산되었다. 세아트 마르벨라는 원본 피아트 판다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존재했으며, 그 중에는 패널밴 형태의 모델도 존재했다. 상용 모델은 이탈리아판 피아트 판다와 외관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세아트 판다는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의 스페인 방문에서 교황 의전용 차량으로도 사용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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