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제왕, 전함 이야기 #4 - '세계 최강' 미 해군의 대표 전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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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제왕, 전함 이야기 #4 - '세계 최강' 미 해군의 대표 전함들
  • 박병하
  • 승인 2020.01.31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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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명실공히 세계 최강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다. 오늘날 미 해군은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하는 '항모 전투단'의 개념에 가장 충실한 함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배수량 10만 톤 이상의 '슈퍼 캐리어(Super Carrier)'를 10척 이상 운용하고 있는 유일한 국가다. 타국의 경우, 막대한 유지비로 인해 아무리 커도 중형급 항공모함에서 대부분 만족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미국은 태평양 전쟁 개전 직전까지만 해도, 당시의 세계 열강들과 마찬가지로, 전함 전력을 중시했던 국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일본의 진주만 공습으로 대부분의 전함을 상실하게 되면서 '항공모함'을 주력으로 하는 전략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미국 전함들은 이른 바 ‘표준형 전함(Standard-type battleship)’이라고도 불리는 공통적인 설계를 취하고 있었다. 이들 표준형 전함은 선체가 짧고 통통한 형상으로 유틀란트 해전의 전훈을 반영한 집중방어 구조와 주포를 선체의 중심선에 적층식으로 배치하는 방식, 그리고 터보 일렉트릭 기관을 사용하여 21노트(약 38.9km/h)의 느린 속도를 갖는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부터 건조되기 시작한 미국의 전함들은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며 태평양전쟁 내내 미 해군의 소중한 전력으로 그 역할을 완수했다. 제 2차세계대전 시기 활약한 미 해군의 전함들을 모았다.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 미국(1941~1947)
1937년 기공되어 1940년 진수된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이전까지 건조된 미국 전함과는 전혀 다른 방향성을 가지고 설계되었다. 노스캐롤라이나급은 본래 런던 해군 군축조약에 의해 14인치 함포를 탑재한 기준배수량 35,000톤급의 전함으로 설계를 시작했다.

하지만 1935년, 일본이 결국 조약에서 서명을 거부하면서 발동한 에스컬레이터 조항에 의해 기준배수량 45,000톤급에 16인치(약 406mm)구경의 함포를 사용하는 전함으로 설계가 변경되어 건조에 착수했다.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네임쉽  노스캐롤라이나(BB-55)와 과달카날에서의 활약으로 유명한 2번함 워싱턴(BB-56)이 존재한다.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미국의 전함 설계에서 큰 전환점이 된 군함이다. 이전까지의 미국식 표준형 전함에서 완전히 벗어난 혁신적인 설계를 기반으로 지어진 덕분이다. 만재 배수량은 기존의 콜로라도급 대비 1만톤 늘었지만 선체 길이를 222.1m로 크게 늘림과 동시에 수중 저항을 최소화하는 설계를 도입했다. 노스캐롤라이나급은 미국 전함 최초로 트윈 스케그(Twin Skeg)형 선체 설계를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트윈 스케그형 선체는 배의 앞쪽은 하나의 선체를 가지지만 뒤쪽으로 갈수록 2개로 나뉘어지는 형상을 말한다. 이는 스크류 프로펠러를 추진하는 추진축을 해수에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으면서도 수중저항까지 줄일 수 있는 설계로, 당시에는 매우 선진적인 설계였다. 오늘날에도 상선을 중심으로 사용하고 있는 방식이다. 

기관부 또한 기존의 미국 전함과는 달랐다. 영국과 일본을 비롯한 타국에서 사용하고 있었던 기어드 터빈을 적용했다. 기관부 출력 증강에도 신경을 쓴 덕분에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최고 12만 1,000마력의 기관부 출력을 확보할 수 있었고, 이로써 27노트(약 50km/h)라는, 미국 전함으로서는 실로 경이적인 속도를 갖게 되었다.

이러한 속도 증가는 항공모함과의 공동작전을 염두에 둔 것이었다. 특히 진주만 공습을 전후하여 기존의 전함을 중심으로 했던 함대 구성을 항공모함을 중심으로 하는 ‘항모 기동 함대’의 개념으로 발 빠르게 전환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전함도 발이 빨라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크타운급 항공모함의 등장 이래 미국 항공모함의 최고속도는 32노트(약 59.2km/h) 이상이었다.

주포는 새롭게 개발한 마크6 16인치 45구경장 주포를 사용했다. 마크6 16인치 주포는 포탑 하나에 3문씩 설치되었고, 이 3연장 포탑을 함수에 2기를 적층식으로, 나머지 1기를 함미에 배치하여 총 9문의 주포를 탑재하게 되었다. 여기에 고성능 레이더와 아날로그식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채용한 최신예 사격통제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처음부터 레이더로 표적을 획득하고 이에 대한 사격 제원을 컴퓨터로 산출하여 사격을 진행한다. 이는 기존의 표준형 전함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혁신적인 시스템으로, 기존에 비해 월등한 정밀 타격 능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장갑의 경우, 14인치 대응방어를 상정한 초기 설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일본이 조약 서명에 거부하였을 당시부터 이미 공정이 상당히 진행되어 있었기에 장갑의 설계를 변경할 수 없었던 데 따른 것이었다. 방어구조는 집중방어구조를 채택했다. 현측 장갑은 최대 12인치(약 304.8mm)의 장갑판을 15도 경사로 적용하였고 상부에는 1.45인치(약 36.8mm), 주 장갑에 3.6인치(약 91.4mm)의 갑판 장갑을 둘러 대낙각탄 방어력을 확보했다. 포탑 전면은 자함의 주포구경과 동일한 16인치 두께의 장갑을 둘렀으며, 포탑의 바벳과 사령탑에는 14.7인치(약 373mm)에 달하는 장갑판을 둘렀다. 어뢰 방어력의 경우에는 총 5중의 격벽으로 구성된 방어구조를 채택하여 수중방어력을 높였다.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국에게 소중한 전력이 되어 주었다. 진주만 공습으로 인해 기존에 보유하고 있었던 전함의 대부분을 상실한 데다, 그나마 남은 전함은 발이 느린 표준형 전함 뿐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대응방어가 불가능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발이 빠른 고속전함(Fast Battleship)의 개념을 실현한 최초의 미국 전함이자, 미국의 건함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군함 중 하나로 꼽힌다.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은 비록 16인치 전함으로서는 방어력에 하자가 있었으나, 미 해군의 주력함으로서 많은 전투에 참가하였다. 1번함 노스캐롤라이나(BB-55)는 태평양 전쟁 내내 가장 많은 전투에 참가한 전함이다. 특히 동부 솔로몬 해전에서 태평양 전쟁의 영웅,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CV-6)의 호위를 해내는 공을 세운 바 있으며, 2번함 워싱턴(BB-56)은 과달카날 해전에서 기함으로 참전하여 일본의 순양전함 기리시마를 주포로 격침시키며 전함 대 전함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현재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중 네임쉽인 노스캐롤라이나(BB-55)는 현재 이름의 유래인 노스캐롤라이나 주로 이동되어 기념함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 미국(1942~1947)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1939년 미국이 건조한 전함이다. 당시 미국은 일본이 런던 군축조약에서 사실 상의 탈퇴 수순을 밟으면서 발동된 에스컬레이터 조항에 의해 신형 전함을 건조할 때에는 조약에서 제시한 35,000톤의 배수량에 더해 10,000톤의 배수량을 확보할 수 있었다. 여기에 미 의회에서는 기존 노스캐롤라이나급 2척을 추가 건조하도록 할 방침이었으나 해군에서는 기존 노스캐롤라이나급의 설계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었기에, 완전히 새롭게 설계된 전함을 원하고 있었다.

당시 해군측에서는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이 대응방어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된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이전에 건조했던 노스캐롤라이급 전함의 주포를 14인치에서 16인치로 환장(換裝)하기는 했지만 방어력 면에서는 14인치급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건조 도중 국제 정세에 의해 설계가 급하게 변경된 부분들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특히 기관부에 보다 근본적인 설계 변경이 필요하며, 수중탄에 대한 대책 또한 미비하여 이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전함은 노스캐롤라이나급의 16인치 주포로 무장하면서도 이 모든 것을 기존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의 건조 승인 당시와 동일한 기준배수량 ‘35,000톤’ 내에서 해결해야 했다. 이는 미 의회가 에스컬레이터 조항이 발동되기 전에 신형 전함의 배수량을 35,000톤으로 승인을 내려버렸기 때문이다. 35,000톤이라는 배수량은 16인치급 함포를 실어야 할 전함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빠듯한 배수량이었다. 심지어 주포를 교체함으로써 37,000톤급으로 불어난 노스캐롤라이나급 보다도 적었다. 이 당시 신형 전함에 반영되지 못한 배수량은 아이오와급 전함에 추가로 적용되면서 아이오와급은 5만톤 이상의 배수량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설계를 시작한 전함이 바로 사우스다코다급 전함이다.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기존 노스캐롤라이나급에서 사용한 마크6 16인치 45구경장 주포를 그대로 사용했다. 주포탑의 배치 또한 전면에 2기를 적층식으로, 나머지 1기를 후면에 탑재하는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또한 노스캐롤라이나급에 사용된 신형의 레이더 기반 사격통제 시스템을 채용했다.

하지만 함체는 완전히 새롭게 설계되었다.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전장 222m에 달하는 노스캐롤라이나급보다 19m나 짧은 203m의 길이를 가지며, 전폭도 33m로 약간 좁았다. 이 때문에 구식 전함처럼 세장비가 짧은 짧고 통통한 형상의 함체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기관부는 출력을 대폭 향상시켜 130,000마력의 최고출력을 낼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이 뿐만이 아니다. 미 해군은 35,000톤에 불과한 배수량에서 16인치 포탄에 대한 방어력을 얻기 위해 장갑 설계에도 혁신을 가했다. 사우스다코타급의 장갑 구조는 상당히 독특했는데, 주 장갑대가 외부로 노출된 기존의 방식이 아닌, 주 장갑대를 함체 안으로 집어 넣은 내장형 구조로 설계했다. 사우스다코다급 전함의 주 장갑대는 최대 310mm의 장갑판을 노스캐롤라이나급보다 더욱 기울어진 19도의 경사로 배치했다. 함의 바이탈 파트를 보호하는 이 장갑대는 함의 아래쪽으로 갈수록 점점 얇아지는 구조를 적용하여 수중탄 공격에 대비하고 이에 맞춰 새롭게 설계한 수중방어구조를 적용했다. 새로운 수중방어구조는 최대 318kg의 TNT에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렇게 완성된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노스캐롤라이나급의 화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더욱 강력한 방어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당대의 전함으로서는 매우 컴팩트하게 설계된 함체는 조타 능력이 상대적으로 우수했으며 이와 같은 형상에도 불구하고 노스캐롤라이나급과 동등 이상인 27.5노트(약 51km/h)의 최고속력을 낼 수 있었다.

보조 무장 또한 노스캐롤라이나급보다 더 증강되었다. 부포는 5인치 38구경장 2연장 양용포탑을 8기 탑재하여 10기인 노스캐롤라이나급보다 수량이 적었지만 40mm 보포스 기관포를 68문, 20mm 외를리콘(Oerlikon) 기관포를 76문이나 탑재했다. 이는 타국의 전함에 비교하면 거의 2~3척분에 달하는 수량이었다. 또한 자매함인 인디애나(BB-58)와 메사추세츠(BB-59), 그리고 앨라배마(BB-60)는 5인치 양용포탑을 노스캐롤라이나급과 동일하게 10기 탑재하여 아이오와급의 등장 이전까지 최상의 방공성능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이 모든 대공포는 고성능 대공 레이더와 통합형 지휘 시스템을 통해 제어되어 한층 효율적인 전투가 가능했다.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노스캐롤라이나에 이은, 미국 전함 역사 상 가장 혁신적인 전함이다. 35,000톤의 빠듯하기 짝이 없는 배수량에서 16인치급의 주포 9문을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주포를 막아낼 수 있는 방어력과 전함으로서 충분히 날렵한 수준의 기동력을 모두 갖춘 사우스다코타급은 태평양의 크고작은 전투에 참가하였다.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과달카날 해전에서도 뛰어난 방어력을 입증했다. 당시, 사우스다코타(BB-57)는 야간에 5km 내외의 지근거리에서 일본 순양전함 기리시마를 위시한 일본 함대의 거센 공격을 받았고, 상부구조물 대부분이 손상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하지만 함선의 구조에는 큰 손상을 입지 않았고, 바이탈 파트 역시 큰 손상이 없었기에, 수리를 받고 다시 전선에 복귀할 수 있었다. 또한 산타크루즈 해전에서 단독으로 적기를 26기나 격추하는 등의 활약을 했다. 또한 1945년에는 미 해군 전함 최초로 일본 본토에 처음으로 포격을 가했다.

현재 남아 있는 사우스다코타급 전함은 3번함 메사추세츠(BB-59)와 4번함 앨라배마(BB-60)의 2척으로 2척 모두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우스다코타급의 설계는 다음 함급인 아이오와급 전함의 밑바탕이 된다. 

아이오와급 전함 – 미국(1943~1991)
아이오와급(Iowa-Class Fast Battleship) 전함은 미 해군이 운용한 전함 중 가장 크고 무거운 군함이다. 1942년 1번함 아이오와(BB-61)가 진수되었고, 2번함 뉴저지(BB-62), 3번함 미주리(BB-63), 4번함 위스콘신(BB-64)이 차례로 완공되어 태평양과 대서양을 누볐다. 본래 5번함 일리노이(BB-65)와 6번함 켄터키(BB-66)까지 건조될 예정이었으나, 태평양전쟁이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끝나게 되면서 5/6번함은 건조 도중 취소되었다.

아이오와급 전함은 당대 미국이 설계하고 건조한 전함 중 최강의 성능을 자랑하는 군함이었다. 아이오와급 전함의 16인치 함포는 마크7 16인치 50구경장 함포로, 노스캐롤라이나급이나 사우스다코타급이 사용한 16인치 함포보다 포신이 훨씬 길었으며, 더 정밀한 사격이 가능했다. 주포탄으로는 1,200kg이 넘는 탄두중량을 자랑하는 초중량탄(Super Heavy Shell, SHS)을 사용하여 이론 상 야마토급 전함의 18.1인치(460mm) 함포에 버금가는 관통력을 자랑했다. 자함에 대한 대응방어가 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생기기는 하였지만 기본 설계가 사우스다코타급의 설계를 확대한 것이었고, 장갑구조 또한 동일하게 자함이 사용하는 16인치 대응방어를 달성한 전함이기에, 결점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아이오와급 전함의 가장 큰 강점 중 하나는 바로 뛰어난 속도다. 아이오와급 전함은  역대 미 해군 전함 중 가장 길게 뽑힌 세장비가 특징인데 이 덕분에 과거 순양전함과 같은 날렵한 함체를 가지게 되어 수중 저항을 줄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사우스다코타급의 함체를 앞뒤로 길게 늘인 형태에 가까웠다. 그리고 이전 함급의 12~13만 마력보다 월등히 강력한 21만 2천마력의 최고출력을 내는 기관부를 가졌다. 이 덕분에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기준배수량 46,000톤에 만재배수량 58,000톤이 넘는 몸집에도 불구하고 최고 33노트(약 61.1km/h)에 달하는 고속력을 자랑했다. 이는 대전 중 건조된 그 어떤 전함보다도 빠른 속도였으며, 심지어 당시 미 해군의 주력 항모인 에식스급 항공모함(32.7노트)보다 근소하게 빠른 수준이었다.

아이오와급 전함은 뛰어난 성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너무 늦게 등장한 탓에, 제 2차 세계대전 중에는 전함으로서 제대로 활약할 기회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오와급 전함은 미 해군을 대표하는 주력함이자, 중요 전력 중 하나였다. 그 중에서도 아이오와급 전함 3번함 미주리는 ‘전쟁이 끝난’ 장소로 유명하다. 태평양 전쟁의 종전을 알린 항복문서 조인식을 미주리의 갑판 위에서 진행했기 때문이다.

태평양 전쟁이 끝난 이후, 미주리는 퇴역을 맞았다가 6.25 전쟁 당시 UN군의 일원으로 참전, 남한 영해에 최초로 진입한 미군 전함이 되었다. 미주리는 인천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한 양동작전으로 강원도 삼척 앞바다에서 포격을 가했으며, 이후 미 8군의 진격을 지원했다. 또한 청진, 단천, 원산 등에 포격을 가했으며, 흥남 철수 작전을 지원하는 등의 전공을 세웠다.  
 
이후에도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항공모함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도 1990년대까지 취역과 퇴역을 반복하며 미 해군의 일원으로서 활약했다. 그리고 1990년 걸프전을 끝으로, 모든 함정이 최종적으로 퇴역하면서 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현재 퇴역한 아이오와급 전함들은 모두 기념함으로 보존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3번함 미주리는 아직도 진주만의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는 전함 애리조나(BB-39)의 맞은 편에 정박되어 있다. 태평양 전쟁의 '시작'과 '끝'이 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출처: 미 해군역사문화사령부(Naval History and Heritage Comm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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