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제왕, 전함 이야기 #1 – 전함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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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제왕, 전함 이야기 #1 – 전함이란 무엇인가
  • 박병하
  • 승인 2019.12.1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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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戰艦, Battleship)은 말 그대로 ‘싸움배’를 의미한다. 싸움배는 인류가 바다로 진출하면서부터 생겨나기 시작했고, 오랜 시간을 거쳐 발전을 거듭해 왔다. 특히 배에 화포를 싣게 되는 근대 이후부터 싸움배는 그 위력과 전략적 가치가 크게 뛰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화포를 주무기로 하는 싸움배 중 가히 최종 진화 단계라고 할 수 있는 군함이 바로 전함이다.

아이오와급 전함 아이오와(미국)

전함은 가장 강력한 함포와 장갑으로 무장한 ‘주력함(主力艦)’을 일컫는다. 주력함의 개념은 범선의 시대에 등장한, 60~70문 이상의 함포로 무장한 전열함(戰列艦, Ship of the Line)이 등장하면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개념으로, 각 국가가 가진 가장 크고 강력한 군함을 이르는 표현으로 굳어졌다.

당통급 전함 당통(프랑스)

주력함으로서 분류되는 전함은 전술적인 가치를 넘어, ‘전략무기’로서의 가치가 매우 컸다. 전함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던 19세기 말엽부터 전함이 마지막 불꽃을 피웠던 제 2차세계대전의 종전에 이르기까지 전함의 전략적 가치는 오늘날의 핵무기와 동등 혹은 그 이상이었다. 따라서 세계 각국은 서로의 전함 보유 척수에 대하여 필연적으로 민감하게 반응했다. 제 1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각국의 전함 보유 척수를 제한하는 군축 조약이 두 차례에 걸쳐 체결된 바 있다.

보로디노급 전함 보로디노(러시아제국)

전함은 대체로 강력한 대구경 함포와 두터운 장갑, 그리고 이 모든 것을 감당할 수 있는 충분히 거대한 크기의 선체, 전술기동에 필요한 동력을 제공하는 충실한 기관부를 모두 갖춰야 전함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한 척의 전함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보조함 십수척 분에 달하는 막대한 비용을 필요로 했다.

해방전함 베이네뫼이넨(핀란드)

이들 중 하나라도 부족하게 된다면, 그 함선은 전함으로서의 가치가 사라지거나, 그 용도가 크게 제한되는 별개의 함급으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속도를 위해 장갑을 줄여서 자신의 주포를 방어하지 못하는 전함은 순양전함(巡洋戰艦, Battlecruiser)으로, 대구경 화포를 사용한다는 것만 제외한 나머지 모두를 축소하여 연안 방어에만 사용되는 전함은 해방전함(海防戰艦, Coastal defence ship)으로 분류되는 식이다.

드레드노트(영국)

현대적인 전함의 효시가 된 함선은 1906년 취역한 영국 왕립 해군(Royal Navy) 소속의 HMS 드레드노트(HMS Dreadnought)다. 영국에서 설계된 이 혁신적인 군함은 ‘거함거포주의(巨艦巨砲主義)’로 요약되는 현대적인 전함이 갖춰야 할 상당 수의 요소를 정립했다.

드레드노트(영국)의 포탑

공격력 면에서는 이른 바 ‘All-big Gun’으로 요약되는, 가용한 최대 구경으로 통일된 주포를 들 수 있다. 기존의 전노급(Pre-Dreadnought Battleship) 전함들은 교전 거리에 따라 대구경 함포와 중구경 함포, 그리고 근접전에서 소형 함정을 상대하기 위한 소구경 함포까지 갖춰야 했었기에 무장의 구성이 지나치게 복잡했고 제대로 된 사격 통제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드레드노트는 주무장을 하나의 대구경 함포로 통일하고 이를 전 포탑이 동일한 사격제원으로 발사하는 전투 방식을 도입하여 더욱 효율적인 전투가 가능했다.

방어력 면에서는 한정된 배수량(군함의 무게)에서 전함이 가져야 할 방어력의 기준을 세웠다. 무작정 장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정한 ‘표준적인 교전 거리’에서 ‘자신의 주포를 방어’할 수 있는 수준의 방어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드레드노트는 주요 부위에 최대 11인치(약 280mm) 두께의 장갑을 갖춰, 중장거리에서 자신의 12인치(약 305mm) 주포를 방어할 수 있다. 이를 ‘대응방어(對應防禦)’라 하며, 전함이 갖춰야 할 방어력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동력 면에서는 피스톤을 이용하는 왕복식 증기기관 대신 증기터빈을 주 동력으로 사용하여 전술적 기동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속도를 확보한다. 당시에나 지금이나 속도는 곧 전투력이다. 발이 빠른 전함은 발이 느린 전함을 상대로 일격이탈을 강요할 수 있으며, 불리한 상황에서 후퇴하기도 용이하다. 운용의 유연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드레드노트(영국)

이렇게 공격과 방어와 기동의 3박자가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는 드레드노트는 곧 열강들 사이에서 그대로 벤치마크 대상이 되었다. 드레드노트는 상대보다 먼 거리에서 일방적으로 피해를 강요하면서도 자신과 동일한 구경의 주포를 방어할 수 있는 장갑을 갖췄으며, 필요할 때 얼마든지 전열에서 이탈하여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전함이었다.

리토리오급 전함 로마(이탈리아)

전함 드레드노트가 취역한 이래, 열강의 건함(建艦) 패러다임은 완전히 뒤바뀐다. 기존에 보유하고 있었던 프리 드레드노트급(Pre-Dreadnought) 전함들은 그 전략적 가치를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열강들은 하나라도 더 많은 드레드노트급 전함을 확보하기 위해 또 다시 군비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군비경쟁은 날로 심화되어 제 1차 세계대전기에 이르게 되면 드레드노트급을 뛰어 넘는, ‘슈퍼 드레드노트(Super Dreadnought)급’ 전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간혹 일부 미디어에서 사용되는 초노급(超弩級)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온 것이다. 제 2차 세계대전기에 활약했던 전함은 대부분 슈퍼 드레드노트급 전함이다.

애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영국)

전함은 아니지만 전함과 동등한 취급을 받은 군함으로는 ‘순양전함(巡洋戰艦, Battlecruiser)’이 있다. 순양전함은 드레드노트급에서 제시된 공격력과 방어력, 기동력의 3요소 중 ‘방어력’을 희생하여 기동력을 크게 끌어 올린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장갑을 덜어낸 자리는 기관부를 증강하여 고출력을 확보하고 여기에 선체까지 길고 뾰족하게 설계하여 수중저항을 줄인다. 이를 통해 빠른 속도의 순양함에 버금가는 고속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펄스(영국)

순양 전함은 전세계 도처에 흩어진 식민지들 때문에 지켜야 할 바다가 넓었던 영국에서 주로 보유하였다. 독일 제국해군(Keisermarine) 또한 제 1차 세계대전 시기 까지만 해도 영국 해군 다음 가는 숫자의 순양전함을 보유하고 있었다. 다만 이렇게 속도를 위해 방어력을 희생한 탓에, 제 1차 세계대전 중 벌어졌던 유틀란트 해전(Battle of Jutland)에서 장갑이 부실했던 순양전함이 큰 피해를 입으면서 이후 순양전함은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샤른호르스트급 전함 샤른호르스트(독일)

이 유틀란트 해전은 세계의 건함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이 시기를 전후하여 방어구조의 설계 개념이 크게 바뀌기 때문이다. 기존에는 근접 전투 상황을 상정한, 함체의 측면에 장갑판을 덧대고 관통을 대비해 내부에 추가로 경사 장갑을 설계하는, 이른 바 터틀백(Turtleback) 방식이 주류였다. 하지만 함포의 대구경화와 교전 거리의 비약적인 증대로 인해 실제 교전 중에는 발사한 포탄의 낙각이 크게 커지면서, 수평 타격이 아닌, 수직 타격에 가까운 모양새를 띄게 되었고 이로 인해 함체 측면보다는 갑판 장갑의 중요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비스마르크급 전함 티르피츠(독일)

또한 유틀란트 해전 이후에는 탄약고나 사령실, 기관부 등과 같이 전투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바이탈파트(Vital part)의 보호를 최우선으로 하는 ‘집중방어(All-or-nothing)’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나치독일이 건조한 전함들의 경우, 베르사유 조약으로 인해 전함 설계 경험이 그 당시 수준에 머물러버리면서 구식 방어구조를 그대로 답습하는 바람에 배수량에 비해 비효율적인 방어구조와 무장을 가진 전함들이 되어버렸다.

전함 뱅가드(영국)

항공모함의 가치가 대두되기 전인 제 2차 세계대전 시기만 해도, 전함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해당 국가가 열강의 반열에 들어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은 물론, 국가가 가진 해군력의 강대함을 가늠하는 지표로서 기능했다. 국가 간의 전쟁이 총력전의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전함의 보유 척수는 늘어만 갔지만, 항공모함의 대두로 인해 해상전의 패러다임이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린 오늘날에는 이미 일선에서 완전히 도태된 지 오래다. 현재 남아 있는 전함들은 대부분 기념함으로서 남아 있는 함정(艦艇)들이고 현재까지 현역으로 사용되는 전함은 없으며, 현재 남아 있는 전함들은 대부분 박물관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리슐리외급 전함 리슐리외(프랑스)

전함은 비록 오늘날에는 무기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기는 했지만, 미디어에서는 여전히 매력적인 소재거리이기도 하다. 거대한 선체에 대구경 함포로 무장한 전함은 시각적인 효과가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선체와 압도적인 화력으로 무장한 전함의 개념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 장르에서 자주 다뤄진다. 다음 기사에서는 전쟁사에 이름을 남긴 세계 각국의 전함들을 간단하게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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