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했던차]대우자동차 레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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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차]대우자동차 레간자
  • 박병하
  • 승인 2019.12.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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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대우자동차는 승용차 시장에서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와 함께 3강 구도를 이루었던 기업이었다. 특히 1970~80년대에는 ‘로얄(Royale)’ 시리즈의 연이은 흥행으로 승승장구하며 대한민국의 고급 승용차 시장을 휘어 잡았다. 하지만 1986년, 현대 그랜저의 등장으로 인해 로얄 시리즈가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대우자동차도 함께 약화되기 시작했다.

대우자동차는 1990년대 들어서 거의 전공분야라고 할 수 있었던 중형세단 시장에서 전륜구동을 앞세운 현대자동차에게 크게 밀리기 시작했다. 현대 그랜저와 쏘나타의 흥행을 기점으로 국내 승용차 시장은 너나할 것 없이 전륜구동 일색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승차감을 중시하는 고급 대형세단에까지 전륜구동을 적용하는 것이 통했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장의 상황에서 대우자동차는 새로운 플랫폼의 중형 세단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1992년, 대우그룹이 GM이 가지고 있었던 대우자동차 지분을 모두 인수하면서 대우자동차는 공격적인 사세 확장과 체질 개선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흔히 “기술은 사 오면 된다”는 말로 김우중 회장을 저평가하는 경우가 있지만, 이 당시 대우자동차 만큼은 예외라고 해도 될 정도로 독자기술 확보에 전력을 집중했다. 1994년 영국 워딩 테크니컬 센터 인수로 DWTC를 설립하고 독일에도 자체 연구소를 설립해 자체적인 R&D 역량을 크게 키워 나가기 시작했으며, 독자 엔진의 개발에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이것이 대우자동차가 1996~1997년 사이에 라노스, 누비라, 레간자의 신차 3종을 빠른 속도로 개발 및 투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이들 중 레간자는 가장 늦은 1997년 처음 출시되었다.

“소리 없이 강하다”...정숙성 강조한 대우의 중형세단
레간자의 외관 디자인은 라노스, 누비라 등의 스타일링을 맡았던 이탈디자인의 작품이다. 이탈디자인은 1990년대에 자사가 재규어의 V12 세단을 위해 구상한 켄싱턴(Kensington) 컨셉트를 바탕으로 레간자의 스타일링을 빚어 냈다.

또한 대우자동차는 이탈디자인에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스타일링 큐를 요청했다고 한다. 이에 주지아로는 한복과 매병 등, 우리나라의 수많은 고미술품들을 직접 감상하고 이들에서 모티브를 얻어 레간자의 디자인을 다듬어 냈다고 전해진다.

레간자의 휠에서는 우리나라의 전통 문양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전해지며, 유연하면서도 절제된 곡선을 강조한 차체 형상 등은 한국 건축과 한복 등의 선을 떠올리게 한다. 이렇게 완성된 레간자는 상당히 늘씬하고 매끈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당시의 대우자동차를 상징하는 삼분할 그릴 역시 레간자에도 어김 없이 반영되었다. 주지아로의 손길을 거쳐 완성된 레간자의 세련된 외관 디자인은 당시 중형 세단 시장의 주목을 끌기 충분했다.

레간자의 차체 크기는 길이 4,671mm, 폭 1,779mm, 높이 1,437mm이며, 휠베이스는 2,670mm로, 경쟁 차종에 비해 약간 작은 몸집을 지니고 있었다. 공차중량은 1.3톤대였는데, 이는 당대 경쟁 차종에 비해 상당히 묵직한 편이었다. 레간자는 대우자동차의 첫 전륜구동 중형세단이자, 에스페로 이래 사실 상 최초의 독자개발 중형 세단이기도 하다. 그 때문에 대우자동차는 레간자에 거는 기대가 컸으며, 경쟁 차종에 비해 우수한 성능을 확보하기 위해 독일 등지에서 험난한 테스트를 거쳤다. 레간자의 탄탄한 기반 설계는 대우자동차가 중대형급 세단으로 개발하고 있었던 매그너스를 개발하는 데에도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차명인 레간자는 영어로 ‘우아함’을 의미하는 ‘엘레강스(Elegance)’와 이탈리아어로 ‘힘’을 의미하는 ‘포르자(Forza)’를 결합한 것으로, 우아함과 힘을 동시에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새롭게 나타난 강자(來强者, 래강자)’라는 숨은 뜻도 있다고 전해진다.

레간자는 인테리어 또한 독특한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특히 대시보드와 센터페시아의 비대칭형 디자인은 지금의 시점에서도 상당히 파격적이다. 운전자 중심으로 구성된 인테리어 외에도 당대 경쟁 차종 대비 고출력의 오디오 시스템을 채용했으며, AQS 시스템을 적용한 전자동 에어컨을 중형 세단 최초로 도입하는 등, 편의사양 보강에도 신경을 썼다.

엔진은 출시 초기부터 단종까지 2종의 1.8리터 SOHC 엔진을 비롯해 1.8 DOHC 엔진, 2.0 SOHC 엔진, 2.0 DOHC 엔진, 2.2 DOHC 엔진에 이르는 6종의 가솔린 엔진을 사용했다. 1.8리터 SOHC 엔진은 103~105마력의 최고출력을, 1.8리터 DOHC 엔진은 137마력(이후 131마력으로 조정)의 최고출력을 냈다. 2.0ㅎ리터 엔진의 경우, SOHC 사양은 110마력을, DOHC 사양은 146마력(이후 141마력으로 조정)의 최고출력을 냈다. 2.2리터 엔진은 142마력의 최고출력을 냈다.

변속기는 수동 5단 변속기를 기본으로, 독일 ZF의 자동 4단 변속기가 짝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도 ZF제 자동변속기의 평이 상당히 좋았다. 신뢰도가 높은 독일제 변속기라는 점과 더불어 도심 주행에 어울리는 약간 짧은 기어비를 채용하여 시장에서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대우자동차가 무엇보다도 강조한 것은 바로 N.V.H(Noise, Vibration, Harshness) 대책이었다. 대우자동차는 소음과 진동을 잡기 위해 당시 레간자에 상당한 양의 흡음재를 적용했는데, 이는 레간자가 덩치에 맞지 않게 묵직했던 원인이기도 하다. 또한 레간자가 받았던 테스트 중에는 N.V.H와 관련된 내용도 적지 않았는데, 이렇게 레간자를 개발하면서 쌓은 N.V.H 관련 노하우는 준대형 세단 매그너스와 준중형 세단 누비라 페이스리프트 모델의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레간자의 N.V.H 대책은 지금도 우리나라의 광고 역사에 남은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정리된다. 레간자는 출시 당시부터 정숙성에 주안점을 둔 독특한 광고를 내보내 화제가 되었다. TV의 볼륨을 아무리 높여도 차의 소리는 들리지 않는데, 길가에 있었던 개구리의 울음소리는 크게 들리면서 “소리가 차를 말한다, 쉿! 레간자”라는 캐치프레이즈가 나타난다. 이는 과장광고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레간자의 이름을 대중에 제대로 각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광고는 1997년 대한민국 광고대상에서 ‘대상’을 거머쥐게 된다.

대우자동차 레간자는 등장 당시부터 그동안의 대우자동차와는 달리,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특히 신차효과가 절정이었던 출시 초기에는 3월부터 7월까지 4개월간 부동의 1위였던 쏘나타 III를 끌어 내리고 연속으로 판매량 1위를 차지하는 등, 중형 세단 시장의 유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하지만 좋은 시절은 실로 오래가지 못했다.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국내 경제 들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부채 비중이 높았던 대우그룹 역시 크게 흔들리며 위기를 맞았다. 여기에 본격적으로 삼성이 본격적으로 ‘삼성자동차’를 통해 자동차 사업에 나서며 출시한 신모델 ‘SM5’의 등장은 레간자의 세일즈에 큰 악재로 작용했다.

대우 레간자는 2000년, 준대형 세단 매그너스가 출시된 이래로는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매그너스의 출시 이후 레간자는 2.0리터 엔진을 주력으로 채용한 매그너스와의 판매 간섭을 우려해 2.0리터 모델군이 사라지고 1.8리터 모델군만 남았다. 심지어 매그너스가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준대형에서 중형으로 포지셔닝을 변경하면서 레간자는 아예 저가형/영업용 수요에 대응하는 차종으로 전환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본가에서의 푸대접과는 별개로, 레간자는 대우자동차의 중형 차종 중에서 결코 적지 않은 수가 판매되었다. 1997년 첫 출시 이래 단종을 맞는 2002년까지 판매된 누적 판매대수는 내수 17만대가 판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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