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저의 이름으로 세단의 본질에 다가서다 - 현대 디 올 뉴 그랜저 3.5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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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저의 이름으로 세단의 본질에 다가서다 - 현대 디 올 뉴 그랜저 3.5 시승기
  • 박병하
  • 승인 2023.08.14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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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의 새로운 그랜저를 시승했다. 현대 디 올 뉴 그랜저는 지난 2022년 하반기 출시되자마자 예약 판매 대수가 10만 9천대를 기록하는 등, 그야말로 화제의 중심에 섰던 모델이다. 또한 현대자동차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모델이자, 자사가 독자적으로 개발에 참여한 첫 번째 고급 대형 세단이기도 한 기념비적인 모델인 초대 그랜저를 계승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모델이기도 하다. 이번에 시승한 그랜저는 3.5리터 엔진을 탑재한 캘리그라피 트림의 모델이다. VAT 포함 차량 기본 가격은 4,885만원(3.5리터 엔진 포함시).

새로운 그랜저의 외관은 등장 당시부터 왈가왈부가 많았다. 전면부 디자인이 바로 앞서 출시되었던 밴 모델 스타리아의 전면부와 너무나도 유사했던 탓이다.

특히 일체형으로 이어지는 한 줄의 수평형 LED 주간상시등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하향배치된 헤드램프 유닛, 그리고 전면부를 꽉 채운 라디에이터 그릴 등에서 영락없이 스타리아 라운지의 전면부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막상 실제로 대면하게 되면, 스타리아와는 전혀 다른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더욱 크고 과장되어 있는 라디에이터 그릴로 인해 엄청나게 거대한 전기 면도기 같은 인상을 준다.

기자는 새로운 그랜저의 외관에서 단연 압권인 부분은 단연 측면이라고 본다. 전반적인 실루엣은 패스트백에 가까운 쿠페형 세단인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층 절제된 선과 면 처리, 그리고 C필러에 마련된 창 등을 통해 정통파 세단다운 멋을 한껏 살려주고 있는 덕분이다.

특히 TG 그랜저로부터 시작된 불룩한 리어펜더를 과감히 포기하고 하나의 선으로 정리한 깔끔한 숄더 라인과 C필러에 창을 내서 D필러까지 만들어 놓은 부분에서는 이른 바 '각그랜저'로 불렸던 초대 그랜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전통적 요소를 현대적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프레임리스 도어를 적용하고 있는 모습에서는 XG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뒷모습은 전면부의 가느다란 LED 주간상시등을 그대로 옮겨온 듯한 한 줄의 일체형 LED 테일램프를 비롯하 극단적인 수평향의 기조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1.9m가 넘는 차폭을 더욱 넓어보이게 하며, 전반적으로 미래적이면서도 안정감 있는 외관을 이룬다. 또한 일체화된 테일램프와 범퍼에 위치한 번호판 등에서도 초대 그랜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인테리어는 외관과 마찬가지로 극단적인 수평향의 구조를 보여준다. 실내에서 수직으로 되어 있는 부분이라고는 스티어링 휠 스포크와 플로어 콘솔 뿐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이러한 덕분에 내부 공간이 더더욱 넓게 보이는 효과가 있으며, 실제로도 넉넉하고 여유로운 공간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현대차 브랜드의 플래그십 모델에 해당하는 만큼, 피아노 블랙 패널과 메탈 등 으로 화려하게 치장하고 있다.

계기반은 중앙 디스플레이와 완전히 연결되어 있는 형상으로 만들어져 있어, 비래지향적이면서도 독특한 분위기를 제공한다. 이 뿐만 아니라 난반사에 대한 대책도 잘 이루어져 있는지, 강렬한 햇빛이 연일 내리쬐었던 시승 당시에도 시인성 면에서 문제 없었다. 또한 세련된 디자인의 UI와 기능적인 구성을 통해 시인성과 사용 편의성 모두 우수하다. 계기반의 좌측에는 차량내 결제 시스템 등과 연동되는 지문인식 센서가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하단에는 공조장치 전용의 터치스크린 패널을 적용해 세련된 감각과 더불어 편의성도 확보했다.

스티어링 휠은 초대 그랜저의 1-스포크 형식을 계승하는 스타일로 만들어져있다. 그렇지만 스타일링만 그러할 뿐, 각종 기능 버튼을 담은 뭉치가 좌우에 존재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자면 3스포크의 형태에 더 가깝다. 하단부가 두춤한 구조로 인해, 운전자의 스티어링 파지 습관에 따라서는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전통을 계승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나쁘지 않은 디자인이라고 본다.

그랜저를 통해 선보인 새로운 컬럼마운트 방식의 변속장치는 통상적인 컬럼 마운트 타입 변속레버와는 다른 조작계통을 갖는다. 완전 전자식으로 이루어진 이 변속장치는 레버 형태의 구조물 가장자리에 위치한 노브(Knob)를 앞/뒤로 돌려서 D-레인지(전진)와 R-레인지(후진), 그리고 중립(N)을, 그리고 노브 끝에 설치된 버튼으로 P-레인지(주차)로 전환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변속 방식은 그동안 사용하고 있었던 버튼식이나, '다이얼'이라고 주장하는 조그셔틀식 장치에 비해 오동작의 우려는 확실히 더 적어 보인다. 다만 플로어 체인지 방식의 변속 장치를 오랫동안 사용해 왔던 운전자에게는 다소의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

앞좌석은 고급 대형 세단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부족하지 않은 구성이다. 특히 에르고 모션(Ergo Motion) 시트가 적용된 운전석은 준수한 착좌감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전동조절, 열선, 통풍 기능, 그리고 마사지 기능까지 적용되어 있다. 시트 자체의 질감은 제네시스 브랜드 못지 않은 느낌을 준다.

뒷좌석도 아주 준수한 착좌감을 제공한다. 내부 공간은 전방위로 넉넉하며, 리클라이닝 기능을 이용해 뒷좌석 착좌부를 최대한 앞으로 빼 놓은 상태에서도 레그룸이 부족하지 않다. 또한 이 급의 차량을 의전용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은 국내 시장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기능들을 마련하고 있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트렁크는 480리터로, 수치 상으로는 대형급 세단들 가운데 넉넉한 편에 속하는 용량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수치보다 더욱 와닿는 점은 내부 구조인데, 내부에 돌출부가 거의 없이 말끔하게 처리되어 있는 공간을 가져, 많은 짐을 효과적으로 적재할 수 있다.

이번에 시승한 그랜저는 스마트스트림 가솔린 3.5리터 엔진과 자동 8단 변속기를 적용한 모델이다. 스마트스트림 가솔린 3.5리터 엔진은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으로 300마력/6,400rpm의 최고출력과 36.6kgf.m/5,000rpm의 최대토크를 발휘한다. 이 엔진은 가솔린 직접분사(GDI) 기구를 적용하고 있으며, 차량 운전 조건에 맞춰 냉각수온 최적화 제어를 해주는 통합 유량 제어 밸브 기술도 적용돼있다.

새로운 그랜저는 정숙성 면에서 국산 준대형 세단 중 가히 최고 수준이라고 봐도 된다. 프레임리스 도어 주변을 3중 실링 처리하고 전좌석에 이중접합 차음 유리를 적용한 점도 우수한 외부소음 차단 능력을 지니며, 여기에 능동형 소음 저감 장치, 흡음 타이어 및 분리형 카매트를 적용하는 등, 정숙성 면에서 굉장히 공을 들인 덕분에 이전 세대에 해당하는 그랜저 IG를 뛰어 넘는 정숙성을 선사한다. 앞서 언급한 요소들 덕분에 외부에서 유입되는 소음도 잘 억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부에서 올라오는 소음 또한 철저하게 대비가 되어 있다. 실내에서 발생하는 잡음도 없다시피하다. 

여기에 시승차에는 제네시스 차종에 적용되는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이 적용되어 있다. 프리뷰 전자제어 서스펜션은 전방 카메라 및 내비게이션을 통해 전방의 노면 정보를 미리 인지하고, 이에 적합한 제어를 가해 최적의 승차감을 제공한다. 이 서스펜션이 적용되어 있는 제네시스 차종들은 대체로 부드러운 감각이 강조되어 있는 승차감을 띄는데, 이 서스펜션을 적용한 그랜저 역시 상당히 유사한 질감의 승차감을 경험할 수 있다. 이렇게 훌륭한 정숙성과 부드러운 승차감이 어우러진 그랜저는 시종일관 쾌적한 운행 경험을 제공한다. 

다만 일상적인 주행에서는 몇 가지 아쉬운 점들도 있다. 전륜구동 차종으로서 상당히 긴 휠베이스를 갖는 것은 좋지만 그 때문에 회전반경이 이전 세대인 IG에 비해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느낌이 강하다. 운전자의 숙련도를 떠나서, 비좁은 골목길이나 작은 크기의 주차장들이 곳곳에 산재한 국내의 도심 환경을 좀 더 고려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외에도 천장 높이에 비해 다소 높게 잡혀 있는 시트포지션도 아쉬운 부분이다. 회전반경에 대한 부분은 후륜 조향장치를 적용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가속감은 3.0리터 엔진을 탑재했던 그랜저 IG와 비교했을 때 의외로 큰 차이가 없다고 느껴진다. 차가 훨씬 크고 무거워진 것은 둘째 치더라도 예나 지금이나 변속기가 상당히 여유를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다. 스포츠 모드로 전환해봐도, 엔진 회전수만 공연히 높아질 뿐, 전체적인 가속 전개에는 큰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물론 가속감각 자체는 고급 세단에 어울리는 중후하고 여유로운 느낌이지만 좀 더 열정적인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을 남긴다.

차량의 운동성능 면에서도 부드럽고 안락한 고급 세단의 전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선형이 완만한 구간에서는 시종일관 묵직하고 안정적은 느낌으로 일관하고, 산악도로나 램프구간 등, 선형이 타이트하고 복잡한 구간에서는 차의 덩치를 온몸으로 실감하게 된다. 거동 자체는 고급 대형세단과 같이 묵직하면서도 안정적인 느낌을 주며, 다소 느슨한 조작계통을 지니고 있어, 직관적인 느낌과는 거리가 있다. 전통적인 고급 대형세단으로서의 모습에 충실한 부분이다.

그랜저를 운전하다 보면, 운행을 시작한 지 일정한 시간이 경과되었을 때 갑자기 운전석의 마사지 기능이 제멋대로 작동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장시간 주행시 피로감을 저감하기 위한 기능이라고 한다. 이 기능이 동작하기 시작하면 요추에 해당하는 부분을 부드럽게 스트레치 해주는 방식으로 마사지 기능이 활성화되는데, 이를 통해 장시간 주행앴다는 사실을 환기시킬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피로감을 줄여줄 수 있다는 점에서 취지는 상당히 좋은 기능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사전 정보 없이 이 기능을 접하게 되는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대로, 마사지 기능이 고장을 일으켰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부분이라고 본다. 물론 이 기능은 차량 설정을 통해 비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이번에 시승한 그랜저에는 다양한 능동안전장비 패키지인 '현대 스마트 센스'가 적용되어 있다. 그랜저의 현대 스마트 센스에는 2세대로 거듭난 전방 충돌 방지 보조(Forward Collision-Avoidance Assist 2) 장치를 시작으로 안전 하차 보조(SEA), 후측방 모니터(BVM), 고속도로 주행 보조 2(HDA 2), 전방/측방/후방 주차 거리 경고(PDW), 후방 주차 충돌방지 보조(PCA), 원격 스마트 주차 보조(RSPA) 등이 포함된다. 특히 HDA 2는 전반적으로 기존 대비 더욱 정밀하면서 반응속도도 더 좋아진 느낌을 주며, 안전한 운행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준다.

공인연비는 3.5리터 엔진과 전륜구동계, 20인치 휠을 장비한 시승차를 기준으로 도심 8.3km/l, 고속도로 12.2km/l, 복합 9.7km/l다. 시승을 진행하며 기록한 구간 별 평균연비는 도심 7.8km/l, 고속도로 11.7km/l로 공인연비를 근소하게 밑도는 기록을 냈다.

이번에 시승한 그랜저는 첫인상과는 달리, 여러모로 초대 그랜저를 계승하기 위한 시도들이 돋보이는 모델이다. 외관이나 실내의 디자인은 대단히 미래지향적인 현대자동차의 새로운 디자인 언어를 바탕으로 하면서 지킬 가치가 있는 전통적 요소들을 계승하는 한 편, 주행 질감 면에서도 현대자동차의 제대로 된 첫 고급 승용차라고 할 수 있는 초대 그랜저의 성격을 보다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등의 시도를 통해 크게 흠 잡을 곳 없이 잘 만들어진 고급세단으로 완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그랜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에 있어서 알게 모르게 현대자동차의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와 유사하거나 맞닿아 있는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에 시승하게 된 3.5 모델 같은 경우에는 그러한 느낌이 더욱 강하게 다가오면서, 그야말로 "전륜구동 기반의 제네시스 세단"에 가까운 느낌을 주었다. 비록 가격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고, 디자인 면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요소들은 존재하지만 새로운 그랜저는 편안함을 추구하는 세단의 본질에 한 발 더 다가선 차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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